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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는 이름으로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11월 21일(목)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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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내 손을 잡은 아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경사진 보도블록 위를 지나면서다. 한번 터져 나온 웃음은 좀체 멈추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물어보았지만 고개만 계속 흔든다. 하는 수 없이 진정될 때를 기다렸다. 가까운 아파트 정원의자에 앉아서 아내는 아까 웃은 이유를 말했다. '당신이 장애자의 남편이 될 줄 몰랐다며, 그게 헛웃음으로 나왔다'고.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며칠 전, 루게릭병을 앓던 아내는 동사무소로부터 '중증장애' 등급을 받았고 뒤이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2급장애 결정이 났다. 손이 불편하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하지 모두가 해당되는 판정이었다. 아내가 장애자로 되면서 나는 졸지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평소 장애는 나와 상관없는 단어인 줄 알았다. 가끔씩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거나 장애인주차 마크를 볼 때면 약간의 연민이 일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계단 옆으로 난 휠체어통로나 횡단보도 앞 경사가 완만한 것도 그저 그러려니 무심코 지나쳤다. 하지만 어느 날 그것은 내 삶 깊숙이 들어와 현실이 되었다. 아내는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해졌다. 손힘이 약해지고 걸음을 뒤뚱거리더니 이젠 혼자서 옷을 입을 수도 없고 밥 먹는 것도 도와줘야 한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해 우는 일도 많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체념을 한 상태다. 마음의 평정을 찾으니 자연 주변사람들도 한결 걱정을 덜게 되었다. 장애주차증을 차량에 부착하고도 한동안 실감하지 못해 일반 주차공간을 찾아다니곤 했다. 어떨 땐 평상시 생각대로 말하다가 문득 아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장애는 조금씩 내 궤도 안으로 들어왔다. 루게릭병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라고도 한다. 근력약화와 긴장이 증가하면서 호흡근의 위축으로 나타나며 병후의 경과가 나빠서 발병 수년 후에 사망하게 되는 병이다. 미국의 야구선수 루게릭이 최초로 앓았던 병이라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호킹박사도 이 병을 앓았다. 삶의 위기는 예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든 힘든 일을 겪게 되고 또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불행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애써 외면한다. 그것들이 기실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장애가 주는 불편은 생각보다 크다. 모든 일이 환자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주변사람의 생활리듬이 깨어지고 일상이 흐트러지게 된다. 자연 짜증도 생기고 불화도 일어난다. 그러나 병을 온몸으로 이겨나가는 당사자만큼 힘들진 않을 것이다. 갑자기 생긴 아내의 장애는 나에게 새삼 역지사지를 가르쳐주었다. 누구든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사람에든 사물에든 겸손해야한다는 것을. 아내는 겨우 일어나 걸음을 내딛는다. 어린아이처럼 뒤뚱거리며. 저 걸음도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아직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바짝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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