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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상대의 왕은 모두 성골인가?(마지막)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24일(수) 18:19
ⓒ 경북연합일보
신라 상대의 왕위 계승
 시조 혁거세왕에서 28대 진덕왕까지 신라 상대의 왕을 배출한 세력집단은 박·석·김, 세 세력집단이다.
 박씨 집단은 혁거세, 석씨 집단은 탈해, 김씨 집단은 알지를 시조로 삼았는데, 이들의 탄생신화를 보면 이주민 집단임이 분명하다.
 이주민 집단은 토착집단인 사로 6촌의 촌장 위에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이주민 세력들은 사로국, 나아가 신라왕을 배출한 세력이 되기 위해 세력 동맹을 맺었든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중 박씨 세력은 1대 혁거세왕에서 8대 아달라왕까지 8명의 왕 중, 4대 탈해왕을 제외한 7명의 왕이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석씨 세력에서는 4대 탈해왕과 9대 벌휴왕에서 16대 흘해왕까지 8명의 왕 중, 13대 미추왕을 제외한 7명의 왕이 나왔다.
 김씨 세력에서는 13대 미추왕과 17대 내물왕에서 28대 진덕왕까지 13명의 왕이 나왔다.
 신라 상대의 왕위계승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부계 종족 내의 계승이었다.
 그러나 왕위계승의 실제를 보면 부자 사이, 종족 안, 종족 사이, 씨족 사이에 이뤄진 경우도 많이 있다.
 탈해왕(석씨)은 남해왕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유리왕의 뒤를 이었고, 파사왕(박씨)은 유리왕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탈해왕의 뒤를 이었고, 벌휴왕(석씨)은 석탈해의 손자라는 자격으로 아달라왕(박씨)의 뒤를 이었으며, 미추왕(김씨)은 조분왕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첨해왕의 뒤를 이었다.
 유례왕(석씨)은 조분왕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미추왕의 뒤를 이었고, 내물왕(김씨)은 미추왕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흘해왕(석씨)의 뒤를 이었다.
 신라에서 김씨 왕위 세습제가 확립된 것은 17대 내물왕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왕위 계승이 장자 상속으로 이뤄 졌으며, 왕권은 그 이전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23대 법흥왕은 불교 공인 이후, 불교를 통해서 왕권을 강화했으며, 강화된 왕권을 기반으로 성골시대를 열었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인도의 전륜성왕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자신을 전륜성왕에 비견하고, 두 아들의 이름을 전륜성왕 아들의 이름인 동륜과 금륜(혹은 사륜)으로 지으면서 신라왕실을 전륜성왕가로 자리매김하려고 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신라 왕실을 아예 부처의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왕즉불(王卽佛) 신앙을 근거로 했는데, 석가모니가 왕자 출신이었기에 그것은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신라 왕실은 해탈을 한 석가모니가 다시 신라왕실에 태어나게 된다는 설정을 하면서 진평왕의 이름은 석가모니 아버지의 이름이었던 정반(혹은 백정)이라 하고, 진평왕의 정비는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인 마야 왕비, 그리고 진평왕의 남동생은 석가모니의 숙부들의 이름인 국반과 백반이라 했다.
 그러나 진평왕과 마야 왕비 사이에서 왕자 석가모니는 끝내 태어나지 않았고, 성골 남자는 한명도 남아 있지 않게되자, 덕만공주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맏딸인 덕만이 즉위했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선덕여왕은 핏줄을 잘 타고나서 한민족 역사에서 최초의 여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8대 진덕여왕은 마지막 남은 성골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김춘추는 왜 성골이 되지 못하고 진골의 신분이었을까?'하는 점이다.
 김춘추는 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를 아버지로, 26대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를 어머니로해 태어났으므로 혈연적으로는 순수한 왕족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김춘추는 성골이 사라진 뒤에야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춘추의 아버지인 용수가 왜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을까?'하는 문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용수가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찾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골과 비성골을 구별 짓는 요소가 될 것이다.
 용수와 춘추 두 부자가 어떤 이유로, 언제부터 비성골이 됐느냐?하는 시기와 원인은 전적으로 그의 조부인 진지왕에 있다고 생각된다.
 진지왕은 정치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폐위된 왕이다.
 '삼국유사'왕력편에 '진지왕묘는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왜 능(陵)이라 하지 않고 묘(墓)라고 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진지왕이 폐위되고 왕의 신분도 박탈된 후, 그 아들 용수·용춘, 손자인 춘추의 신분도 성골에서 진골로 강등됐다고 보아진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신라의 골품제도는 신라사회를 규제하는 근본원리였다.
 신라 상대 초기에는 박·석·김, 세 종족 간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마립간 시대인 내물왕 때부터 김씨 세습제가 확립됐고, 법흥왕 때 성골제도를 뒀다.
 성골과 진골은 별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진골만 있었는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타의 왕족과 차별을 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성골집단은 재위(在位)하고 있는 왕을 중심으로 왕과 그의 형제의 가족들로 한정됐으며, 왕위 계승은 이들 성골 집단에서 이뤄 졌다.
 그러나 28대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의 씨가 남지 않지 않게 되자, 그 뒤를 이어 진골 출신인 김춘추가 왕위를 이어 받으므로 성골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 상대의 왕은 모두 성골이란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사료된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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