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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상대의 왕은 모두 성골인가?(2)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17일(수) 17:50
ⓒ 경북연합일보
성골은 골족 가운데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신분이었다. 성골(聖骨)은 국왕을 포함해서 왕위 계승권을 가지는 왕족으로 매우 폐쇄적이고 규모도 작았다.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한 법흥왕 대에 왕위를 신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왕족 종족을 성골이라 칭하며 편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진덕여왕 때까지는 성골이 왕위를 계승했다.
 진골 역시 왕족으로서 신라 지배계층의 핵심을 이루면서 모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진골에는 내물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 혈족뿐만 아니라 박씨도 포함돼 있었으며,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복속한 국가 중 금관가야나 고구려(보덕국)처럼 큰 국가의 왕족은 진골에 편입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신라 하대(下代)에 이르면 진골의 수가 비대해지게 되면서 진골임에도 6두품으로 신분이 하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골은 골품 제도를 통해 특권을 보장받았으며, 고위 관직을 독점해 신라의 중앙 권력을 지배했다. 또한 혜공왕 사후에 무열왕계 왕실이 단절되게 되면서 당시 왕가와 혈연관계가 멀던 진골 출신의 유력자였던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대에는 진골들이 중앙 권력을 놓고 경쟁하면서 신라 사회가 혼란에 빠졌으며,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진골이 지방으로 이주해 호족이 되기도 했다.
 6두품은 진골 바로 밑의 귀족 신분이다. 6두품은 주로 사로 6촌장을 비롯한 소국 출신의 지배자 씨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 복속된 소국 가운데 대부분이 6두품으로 편제됐으며, 일부 강력한 세력을 갖춘 소국의 지배층은 진골이 되기도 했다. 6두품은 왕족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신분이었기에'득난(得難)'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진골이 독점한 최고위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그래도 중앙정부 부서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에 배치돼 신라 사회의 지배층으로 활약했다.
 신라 중대에는 왕권을 강화하려는 국왕과 결합해 친위 세력으로 크게 성장했다. 출세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진골에 대해 불만을 가졌으며, 국왕 역시 진골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6두품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권이 약화되고 진골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격화된 하대에는 권력에서 소외되면서 반 신라적인 계층이 됐다. 주로 유학을 익혀 관료제의 기반을 닦았으며, 불교에 귀의해 사상계를 이끌기도 했다. 고려가 건국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계층도 주로 6두품이었으며, 그 동안 축적돼 있던 학문적 기반을 토대로 호족 세력과 함께 고려의 지배층이 형성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5두품은 6두품 밑의 신분으로 주로 촌장 계층이 5두품으로 편재됐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5두품은 지방의 진촌주(眞村主)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 5두품 역시 관직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으며, 대체로 실무직이나 지방관부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관위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4두품은 5두품 밑의 신분이자 사실상 최하위 귀족 계층이다. 원래는 4두품 아래에 3·2·1두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사실상 소멸돼 평민과 같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4두품도 5두품과 같이 촌장 계층이 편재된 것으로 보이며, 5두품보다 세력이 약한 촌장이 편재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따르면 4두품은 지방의 차촌주(次村主)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 4두품은 최하위의 관직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골품제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신분에 따라 맡을 수 있는 관등의 상한선을 규정한 것이다. 신라 17개 관등 가운데 제1관등인 이벌찬(伊伐飡)에서 제5관등인 대아찬(大阿飡)까지는 진골만이 할 수 있었고, 다른 신분층은 대아찬 이상의 관등에 올라갈 수 없었다.
 신분에 따른 관직 임명 시 제기되는 하급 신분층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상한 관등에 몇 개의 관등을 더 세분해서 두는 중위제(重位制)가 실시됐으나 골품제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이와 같이 골품제는 신라의 국가형성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6세기 초는 이미 법제화됐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거쳐 멸망에 이를 때까지 거의 변함없이 신라사회를 규제하는 중요한 근본으로서 작용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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