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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靑角)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7월 04일(목) 17:36
ⓒ 경북연합일보
녹색 뿔이 파도에 일렁인다. 물결을 흔들며 금방이라도 수면 위로 올라올 태세다. 밤새 바닷가를 거닐던 사향노루가 잊어버리고 제 뿔을 놓고 간 걸까. 부채꼴모양의 청각 사이로 어린 물고기떼가 한가로이 헤엄쳐 간다.
 청각(靑角)은 간조 때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부근 바위나 조개껍질 등에 붙어서 자라는 해조류이다. 몸은 짙은 녹색이고 높이는 10∼30cm, 굵기는 1.5∼3mm 정도이며 부드러운 해면체로 이뤄져 있다. 자산어보에는 해송으로 기록돼 있는데 바다 속에 사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식용, 약용으로 이용되며 김치를 담글 때 이것을 넣으면 젓갈이나 생선비린내, 마늘냄새를 중화시켜 뒷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여름이면 어린 우리들은 종일 바닷가에서 보냈다. 발목까지 잠기는 수심에선 여러 가지 해초가 많았다. 청각, 서슬, 파래,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했는데 특히 청각이 많았다. 가져온 그물망에 보따리 가득 담아오면 어머닌 그걸 살짝 데워 초고추장에 무쳤다.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엔 청각무침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훌쩍 비웠다. 얼음을 동동 띄워 냉국으로도 먹었는데 그 또한 별미였다.
 뿔은 발굽을 가진 포유동물의 머리 윗부분에서 자라는 딱딱한 돌출물이라고 백과사전에 기록돼 있다. 사슴이나 염소, 도마뱀, 새, 공룡, 곤충 중 몇 개의 개체가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코뿔소를 제외하곤 쌍으로 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뿔이 3미터가 넘는 황소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뿔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순하다. 그건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무기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 독수리 등의 짐승에겐 찾아볼 수 없다. 커다란 뿔을 세 개나 가진 트리케라톱스는 몸길이가 8∽9미터이고 무게는 약 10톤 내외였지만 초식공룡이었다고 한다. 가장 부드러운 뿔을 가진 것은 달팽이가 아닌가 싶다. 그들은 촉수 끝에 눈을 달고 세상을 유유자적 유랑한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대개 뿔을 가지고 있다. 실제 안압지에서 나오는 기와들을 보면 익살스런 도깨비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귀면와라고 부른다. 축구응원단의 붉은 악마는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빈콜리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모세'가 있는데 머리에 뿔이 두 개 돋아나있다. 고대주화에 새겨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머리에도 둥글게 말린 뿔이 있다고 한다. 왕관도 뿔 모양을 하고 있으며 투구도 일종의 그런 기능을 가졌지 않을까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뿔은 이처럼 선한 이미지로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끔씩 부정적 이미지로 변질되기도 한다. '뿔났다'고 하면 '화가 났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6-70년대 반공교육이 심화됐을 때 북한사람 머리에 흉한 뿔을 그려 넣기도 했다.
 푸른 뿔을 가진 개체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청각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은 재래시장에 나가서 청각을 사야겠다. 살짝 데워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아둔해진 내 머리에 귀한 문장뿔(文章角) 하나 돋아날지도.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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