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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를 위하여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20일(목) 12:35
ⓒ 경북연합일보
플래카드는 오늘도 할 일이 많다. 해장국집 개업도 해야 하고 노인요양보호도 가야하고 영어수학원생도 모집해야한다. 가끔은 세금납부독촉이며 임금인상 투쟁농성도 벌인다. 더러는 눈물의 고별세일도 하면서.
 저 공중에 최초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매단 이는 누구일까? 플래카드란 광고 혹은 고지를 목적으로 게시되는 포스터나 장식판을 일컫는다. 벽보, 삐라, 간판 등을 포함하는데 보통은 도로나 건물 주변에 게시되는 현수막을 말한다. 지정된 곳에 설치되는 외에도 가로수 사이나 담장에 내걸리기도 한다.
 도로위에서 만나는 현수막의 내용은 다양하다. 개업을 알리는 문구에서부터, 행정기관고지나 행사안내 등이 거리를 메운다. 이처럼 여러 계층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이 업소광고이다. 불경기일수록 간판제작업체는 성업한다고 한다. 플래카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창업과 폐업의 주기가 빨라지니 자연 알려야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리라.
 플래카드는 동사다. 그것들은 모두 한 시대의 중심을 온 몸으로 관통한다. 미장원과 통닭집과 카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최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의 방법을 찾는다. 불황의 늪을 건너, 사나운 맹수를 피해 건기가 계속되는 도시의 정글 속을 사생결단 헤쳐 나가야 된다.
 때론 형용사가 되기도 한다. 뺑소니차량을 찾아 달라거나, 생존권을 보장하라거나, 집 나간 치매노인을 찾는다거나. 저마다 아픈 사연을 읽노라면 잠시 먹먹해진다. 그럴 때 하나의 문장은 가슴 절절한 품사가 된다.
 마음 불편한 것들도 많다. 그중 가장 보기 싫은 건 정치인의 구호다. 선거 때만 되면 거짓공약들이 우후죽순 도로를 누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해놓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리고 만다.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나눔 봉사실천이나 생활체육운동경기 우승, 혹은 이장 당선 등이 그것이다. 삶의 소소함이 묻어 있는 그런 내용들을 보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언젠가 고향 지인들이 축하 현수막을 걸어준 적이 있다. 신춘문예 당선 때였다. 대부분 촌로들이라 신춘문예가 무언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과 마을 초입에 두어 달간 걸린 그것은 바라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뭇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그냥 예삿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최근 내가 사는 동네에 플래카드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건물마다 '임대'라고 써 붙여놓았지만 2,3년 임차인을 못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룸이며 아파트 전, 월세는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살기가 팍팍하니 소비가 떨어지고 감정이 메말라간다. 사람들 얼굴이 낡은 천처럼 그늘져 있어 좀체 웃음을 만나기 어렵다.
 '맛나분식' 개업광고가 바람에 펄럭인다. 한쪽 모퉁이가 찢어져 곧 떨어져나갈 듯 위태롭다. 하지만 한사코 놓지 말아야할 그 무엇이 있다는 듯 플래카드는 허공의 모서리를 꽉 움켜잡고 있다. 이를 앙 다문 채.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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