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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혹은 섬, 그리고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6일(목)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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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기다리는 것들은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저녁의 정류장에 앉으면 쓸쓸함이 온 몸으로 밀려온다. 다족류의 어스름이 발밑에 찰랑거리고 천천히 제 경계를 지우는 것들. 산마루가 지워지고, 아파트가 지워지고, 가로수와 골목이 지워지고. 저녁은 어디서 흘러와 어느 곳에 닿는지. 저마다 노선을 단 버스가 무심한 듯 지나간다. 더러는 서고, 더러는 좌석에 기대어 있는 무표정들. 흑백의 파노라마들이 창밖을 응시한다. 하루를 마감했다는 안도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내일의 불안 같기도 한 얼굴들. 그러나 서로를 외면한 채 덜컹거리며 스쳐간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집으로 가는 버스인가? 단지 그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바람일까? 흩어지는 구름일까? 깜빡거리며 가로등 하나가 어둠 속으로 익사한다. 저녁의 손이 천천히 외로움을 드로잉 하는 시간. 고흐의 <슬픔>은 무릎에 울음을 묻고 긴 머리를 흐느낀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혹은 샤무엘 바케트처럼. '이 광대한 혼돈 속에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그건 우리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야' 언제 올지도, 온다는 것조차도 불분명한, 어쩌면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를 불확실을 기다리는 건 현대인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것들은 때론 더디 오고, 가끔은 오다돌아가고, 더러는 오지 않고, 그러다 결국엔 기다림을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기다림이 사라졌을 때, 더 이상 기다림을 기다리지 않을 때, 우리는 까마득한 벼랑처럼 슬퍼진다. 로테를 기다리는 베르테르처럼. 정류장은 외딴섬. 종일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가까스로 뭍으로 올라온 표류들이 잠시 젖은 물기를 터는 곳. 인간의 삶은 일생동안 섬에서 다음 섬으로 건너가는 항해 인지도 모른다. 섬과 섬 사이 집을 짓고, 섬과 섬 사이를 사랑하다, 섬과 섬 사이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 나는 지금 어떤 익명의 고도(孤島)에 난파됐는지. 쿨럭거리며 길들이 다가왔단 다시 멀어진다. 먼지 묻어 남루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어떨 땐 정류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는 부류도 있다. 무언가에 쫓기듯 퀭한 눈동자를 감추며. 그런 것들은 언제나 낡은 뒷모습을 남긴다. 단 한순간의 쉼도 없는 여정이란 얼마나 고달픈 일이겠는가. 밤이 깊어진다. 나는 오랫동안 이곳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학생은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떠났다. 주름이 가득한 노인도,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도, 가난한 연인들도.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혹은 기다리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나방 한 마리 노선도 위에 앉아 희미해진 길을 읽는 밤의 심해에서. 자정이 넘으면 정류장은 이제 문을 닫는다. 종일 제 몸속의 길을 꺼내느라 피곤했던 눈을 잠시 붙여야 한다. 새벽 네 시까지. 짧은 수면과 긴 노동은 어찌할 수 없는 그의 숙명. 도착과 기다림, 만남과 이별, 떠나감과 돌아옴, 노선과 비노선을 생채기처럼 껴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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