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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자
정기석 경북남부보훈지청 복지과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4일(화)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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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우리나라 민족운동사의 전환점이었던 만큼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일본은 우리나의 주권과 경제권인 토지를 빼앗고 아주 무자비하게 우리민족 고유문화를 말살하고 전 국토의 40프로를 동양척식회사를 비롯한 일본국민에게 헐값으로 넘겨줘 농민들이 비참한 생활에 시달리도록 했다.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장한 "각 민족은 자기의 정치적 조직이나 귀속문제를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 압력을 받지 않고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의 자극을 받아 1919년 기미년에 손병희 등 33인이 그 해 3월 1일 서울 탑골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온 겨레가 민족해방을 위해 일으났으나 일본군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전 국민들이 도처에서 의병이 돼 일어났고, 해외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등 자국의 주권을 위한 세계혁명사의 하나로서 그 가치를 평가받는 운동이었다 해도 다름 아니다. 특히 이화학당 고등과 1년생이었던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에 참여해 만세운동을 하며 주도하다 왜경에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 감옥에서 불과 17세의 나이에 갖은 고문과 학대속에 숨지게 됐다. 이러한 열사들이 있었기에 3·1운동은 일본군의 총칼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몇 개월동안 계속됐고, 이 시기 사상자만 5천, 투옥자가 4만7천명에 달했다. 이러한 삼일절의 의미를 세가지로 요약하면 우리 겨레가 일심동체의 마음으로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하나가 돼 의사를 표현했고,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우리 겨레의 정신적인 '얼'을 찾아준 인권선언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총칼없이 오직 태극기만 든채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개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립운동이었다. 우리는 이 날을 길이길이 빛내고 자주 독립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1949년 10월1일 법률 제53호로서 3·1절을 국경일로 정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순국선열들이 쌓아온 숭고한 독립정신을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새기며 다시 한번 '태극기'를 휘날리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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