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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신라인(5) 개방과 보수가 공존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4일(화)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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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박혁거세가 주도했던 진한계통의 주민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단정적으로 고신라의 성풍속이 개방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도화랑의 경우는 보수적이었다. 그럼 이제 진지왕의 혼인 귀신과 도화랑이 실제로 관계를 해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생각해 보자.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형랑의 출생 이야기는 설화적으로 각색됐다. 그러니까 비형이란 인물은 진지왕의 서자 혹은 유복자였을 것이다. 진평왕이 그를 궁중에 데려다 키우면서 그토록 관심을 보인 것을 보면 그러한 추론을 할 수 있다. 비형랑의 탄생 비밀을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진지왕이 폐위된 후 곧바로 죽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진지왕은 일정기간 특정 장소에 유폐됐다가 죽었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재위 4년 후인 579년 가을에 죽어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했고, '도화녀-비형랑' 설화에서는 576년에 왕위에 올라 4년 만에 정치가 문란하고 음탕하게 놀아 폐위 됐다고만 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에서는 4년 만에 폐위됐지 죽었다고는 안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도화녀와 관계해서 비형랑을 낳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진지왕이 폐위된 후 유폐된 상태에서 도화랑을 만나 비형랑을 낳았을 수 있다. 마침 위서 논쟁이 있는 '화랑세기'는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단서를 제공한다. '화랑세기'에는 '진지왕이 폐위된 후 유궁(幽宮)에 3년간 유폐됐다가 죽었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 기간에 진지는 도화랑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 사랑의 결실이 비형랑이 된다. 그러니까 비형랑은 춘추의 아버지가 되는 용춘과는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화랑세기'는 믿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화랑세기'의 저자가 진지왕과 도화녀 설화를 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귀신과 사랑을 나누어 아기가 태어났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그 설화는 곡절이 있었을 거고, 그 곡절은 바로 일정기간 진지가 살아 있었을 거다. 뭐 그렇게 추측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어떻게 귀신과 산 사람이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몇 해 전 '귀접'이란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두 자매가 살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밤마다 귀신이 들어와 언니와 관계를 한다. 귀접 이야기는 샤먼세계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다. 개성 덕물산에는 최영장군을 모시는 당집에 있는데, 매년 최영장군을 모시는 기일에는 젊고 예쁜 처녀 무당이 신부복을 입고 사당에서 잠을 잤다. 최영 혼령의 섹스 파트너였던 셈이다. 신라인들의 귀접에 관한 의식은 우리가 잘 아는 처용무에도 나타난다. 남늦도록 노닐다 들어온 처용이 보니까 자기 마누라가 귀신과 사랑을 나누고 있어 물러나며 "두 다리는 내 것인데 빼앗겼으니 어찌하리"하고 체념한다. 그러니까 비형랑 탄생이야기는 귀접을 인정하는 무속문화를 동원해서 진지왕의 사생아 비형의 출생을 미화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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