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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 당신 - 思父曲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5월 16일(목) 18:13
ⓒ 경북연합일보
당신이 없는 계절을 올해도 불두화가 만개했습니다. 담장을 훌쩍 올라선 가지마다꽃송이들이 뭉텅이로 내려앉았습니다. 솜뭉치 같기도 하고, 눈송이 같기도 한 꽃들이 한동안 공중꽃밭을 이루겠습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나무는 생전의 당신이 심은 것이지요. 어느 해 어린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것이 지금은 수령 이십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불두화란 이름은 통상 사월 초파일 전후해서 활짝 피어나는 꽃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것이라죠. 절(寺)에도 한 번 안 가본 양반이 왜 하필 불두화였는지 어머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정원수로 쓰이며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 때문에 사찰에 주로 많이 심어져 있으며 꽃말은 은혜, 베품이라 합니다.
 당신은 평소에 꽃을 좋아했지요.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정도의 비좁은 마당에 어렵사리 서너 평 화단을 만들고 그곳에 빼곡히 화초를 심었습니다. 수국이며, 복수초, 능소화, 채송화가 지금도 철따라 피어나곤 하지요. 아마도 늘 파도에 시달리며 고기를 잡아야했던 당신이 마음 붙들어둘 곳이 그것뿐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평생 어부로 산 삶이었지만 그런 거친 환경과는 달리 당신은 퍽이나 감상적이었습니다. 약주를 한잔하고 오는 날엔 어김없이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애수의 소야곡>,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이 즐겨 연주하던 레퍼토리였죠. 노랫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는 날이면 막걸리심부름 하느라 저는 연신 구멍가게를 들락거렸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낭만은 현실적인 어머니와 자주 부딪혔습니다. 마당에 화단을 만들 때도, 집안에 그림액자를 걸어놓을 때도, 난데없이 비싼 진공관전축을 들여왔을 때도 몇 번의 다툼 끝에야 성사되곤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진 오토바이에 스피커를 달고 뽕짝과 트로트를 틀며 읍내를 달리곤 했지요. 뒷좌석엔 낯선 할머니를 태운 채. 어머닌 알면서 모른 체 했습니다. 다 늙은 영감이 딴 살림 나겠냐며.
 제가 문학을 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 당신의 영향이 컸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감성과 어머니의 이성이 결합된, 그러나 감성 쪽으로 조금 더 가까운 정서 때문에 한 줄의 글이나마 끼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 문학적 고향은 온전히 당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 년의 절반이상을 부재하는 이유가 밥벌이 때문이었다는 건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시고기나 황제펭귄의 수컷처럼, 한 가정의 중심이면서 변방일 수밖에 없는 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숙명이기도 하겠지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당신은 평소 과묵해서 자식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책망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윽이 지켜보기만 했지요. 그래서 자식들이 다 어긋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씩 당신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이즈음, 불현 듯 잊힌 얼굴이 떠오릅니다. 키가 나지막하고,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하며,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눈이 선하던. 오월의 불두화 아래 서면 어디선가 하모니카소리가 들려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오월이 다 가기 전, 당신이 영면한 호국원엘 한번 다녀올까 합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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