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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귀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5월 02일(목)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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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미역은 귀가 많다. 자귀나무처럼. 귀가 많다는 건 마음이 선량하다는 것. 소쿠리에 소복이 담긴 미역귀에서 물씬 바다 향이 끼쳐온다. 귓밥 같은 잎을 들추면 속살 깊숙이 갈색의 파도소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미역귀는 미역줄기 위에 달린 씨앗주머니를 말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꾸다리라고 하는데 그 모양이 탐스럽게 핀 장미나 국화 같다. 통상 한 줄기에 하나가 열린다.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따로 떼어서 말려 무쳐먹는다. 튀각으로 만들어도 맛이 좋다. 내 고향 구룡포에선 해마다 사월 중에 돌미역을 채취한다. 뭍이 가까운 연안에선 여기저기 해녀들이 테왁을 띄우고 작업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혹한의 겨울바다에서 자란 미역이 연중 가장 맛있는 시기가 이때이다. 집집마다 그물로 된 발에 직사각형 올을 만들어 널면 기다렸다는 듯 야산 중턱엔 산벚이 활짝 피어난다. <동의보감>에 '미역은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부리의 맛은 달고 잎의 맛은 담담하며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중국 당나라 시대 백과사전인 <초학기>에는 '고려 사람들이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서 생긴 상처를 미역을 먹으며 치유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먹였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미역귀는 미역에 비해 점성이 높으며 오돌토돌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부산물로 여겨 식재료로 잘 사용하지 않았다. 최근에야 신진대사와 해독작용에 도움을 주는 재료로 알려지게 되어 그 가치가 높아졌다. 칼륨, 칼슘, 요오드 등의 성분이 많고 특히 끈적거리는 진액인 후코이단 성분은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순은 논어의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 살을 이르는 말이다. 불혹과 지천명을 거쳐 온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어느새 이순의 나이에 이른 지금, 나는 아직도 미역귀처럼 순한 귀를 가지지 못했다. 입과 눈이 귀보다 많아서 듣는 것보단 보는 것과 말하는 것에만 치중했다. 고흐는 어느 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의 <귀를 자른 자화상>은 오른쪽 귀를 붕대로 싸매놓은 그림이다. 고갱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지만 궁극적으론 자신의 예술을 승화시키기 위한 고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잡다한 소리를 듣지 않고 오직 내면의 궁극에만 집중하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 앞에 새삼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부처의 귀가 큰 이유는 모든 중생의 생각을 듣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디언의 격언 중에는 '귀 기울여라. 너의 혀가 너를 귀머거리로 만들기 전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듣는 것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역귀를 초장에 찍어먹으며 생각한다. 내 귀가 한 줄의 시(詩)를 위해 밝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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