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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독일<5> 전통을 지키는 약속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13일(수)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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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독일 뿐 아니라 유럽 대다수 국가들은 전통을 아주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선 전통을 흔히 케케묵은 관습이나 제례 따위로 생각하기 쉽다. 그들이 간직하는 전통은 아주 사소한 집기부터 레스토랑까지 오래 보존하여 아낀다. 별 대수롭지 않을 것 같은 이런 문화에서 나는 뭐든 새 것만 선호하는 천박함이 없는 고전미를 느꼈다. 옛것을 귀히 여기는 문화는 옛 어른들의 역사성도 더불어 존중한다.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을 은근히 폄하하는 내면에는 유구한 전통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독일의 길거리에서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와이셔츠 단추를 몇 개 열어 제친 모습은 무조건 미국인, 상놈이라며 흉을 본다. 유럽은 중앙집권식 정치제도가 아니기에 아시아의 대도시처럼 대거 밀집한 형태가 드물다. 우리의 읍, 면 단위 작은 도시들이 잘 분포되어 지방지치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한다. 그래서 각 지방마다의 전통과 특징이 더욱 잘 보존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요리를 글쓰기만큼 즐기는 나는 독일에서도 주로 그릇가게가 눈에 띄었다. 서구의 그릇은 음식물을 담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예술품에 더 가깝다. 너무나 아름다운 접시와 찻잔의 문양들과 주전자와 쟁반 등의 디자인에 흠씬 빠져서 시간의 흐름조차 잊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특정 문양의 그릇 옆에 꼼꼼히 써둔 메모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525년대에 최초로 만들어진 그릇의 디자인과 문양을 앞으로 2525년까지 생산한다는 약속이었다. 그런 메모들이 허다히 널려있었다. 이 그릇은 몇 년도 제작되었고, 앞으로 몇 년까지 제작하겠다. 그런데 그릇회사의 주인이란 항상 바뀔 수 있고, 또 죽을 수 있다. 동행에게 물어보았다. 저 글들의 신빙성을 어찌 믿을 수 있느냐? 내일이라도 회사 경영자가 바뀌거나, 회사가 도산할 수 있지 않느냐? 한국에서 기업의 약속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독일은 아무리 부자 기업이라도 한국처럼 문어발식 영역 확장을 국가에서 절대로 허용치 않으며, 사회적으로도 용납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몫인 두부나 콩나물에조차 대기업이 달려드는, 그런 후안무치 염치없음을 국민정서가 근본적으로 용서하지 않고 불매할 것이다. 한국 대기업의 방만하고 무분별한 경영체계를 독일에서 비웃는 언론기사가 자주 나왔다. 그래서 독일의 기업들은 몇 대를 이어가며 전통성 가업으로 물려받아 좀체 도산하지 않는다. 그리고 혹여 경영주가 바뀌어도 이미 약속된 것을 함부로 져버리거나 무책임하게 없애지 않는다. 그래서 수 백 년씩 몇 대에 걸쳐 한 가정의 보물처럼 그릇들을 되물림한다. 사실 어느 집에나 초대로 방문하면 주부들이 전통적인 그릇들로 식탁을 꾸몄다. 몇 대 조의 할머니께서 쓰시던 것인데 올해로 몇 년이 되었다는 설명을 자랑스럽게 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스럽지 않은가? 은이나 금으로 된 그릇이 아닌 사기나 도자기가 어찌 수 백 년 간 한 세트로 온전히 간직될 수 있는가?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더욱 놀랍고 부러워서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 합리적인 국가, 독일에서는 커피 잔이 깨지면 컵만 팔고, 컵 쟁반은 안 사도 되었다. 서양음식의 풀코스에는 크고 작은 접시들과 스프그릇 등이 필요한데, 하나가 깨질 경우, 그 한 개만의 구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대대로 같은 문양의 전통성을 이어받으며, 조상들의 선택을 고리타분한 취향으로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서 또 다음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세트 중에 하나가 깨졌는데 팔라고 했다간 욕이나 흠씬 얻어 드시고, 돌아선 뒤통수도 온전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방엔 전통이 없다. 새로 나온 신형이면 뭐든 다 세련된 감각이라 칭송받는다. 이 슬프고도 허망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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