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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향(枓香)을 그리며
김영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07일(목) 18:44
ⓒ 경북연합일보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우는데 어느덧 술도 비워 없어지고 임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헤어짐을 슬퍼하며 퇴계와 두향이 마지막 밤에 주고받았던 한시입니다.
 어느 때, 지인과 함께 도산서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안동시 도산면 영지산자락에 위치한 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승모하고 영남학파의 위세를 키우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저는 선생의 학업보단 인간적인 면모에 더 관심이 갑니다.
 서원 안쪽 화단에는 퇴계가 두향으로부터 받아서 심었다는 매화나무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 절절함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 임을 향한 일편단심이 어우러진 매화는 그때의 사무침을 전하려는 듯 아직도 잎이 성성합니다.
 퇴계는 48세 때 단양군수로 부임하는데 고을관기였던 18세의 두향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그는 부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터라 시서와 거문고에 능하고 총명한 두향에게 애틋함을 느껴 정을 나누게 됩니다. 남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강선대는 두 사람이 자주 찾던 곳입니다. 하지만 9개월 뒤, 풍기로 발령이 나고 관기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법에 따라 헤어진 후 다시는 살아서 만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두향은 헤어질 때 수석 두개와 매화 화분 한 개를 주었습니다. 퇴계는 날마다 매화에 물을 주며 두향을 생각했습니다. 두향은 관기생활을 청산하고 평생을 수절하며 퇴계를 그리워합니다. 퇴계 나이 70세 겨울, 두향은 그의 부고를 듣고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가 먼발치서 문상한 후, 단양으로 돌아와 곡기를 끊고 죽음을 택합니다.
 사랑이 물질화되는 시대입니다. 진지함은 사라지고 가벼움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관계가 대세입니다. 그러한 때,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쳐 오직 한 사람만을 품은 두향의 정절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비록 제도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지만 나이를 뛰어넘고 신분을 극복한 각별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울 메이트(soul mate)는 영혼의 동료라는 뜻으로 서로 깊은 영적인 연결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동양에서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하죠.
 매, 란 국, 죽은 옛 선비들이 귀히 여기던 사군자입니다. 그중 특히 매화는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합니다. 퇴계는 유독 매화를 좋아해서 그것을 읊은 시가 4,500수라 전해집니다. 세상을 떠날 때 선생의 한 마디가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고 하니 이 모두가 두향에 대한 애틋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두향을 생각합니다. 편의점 상품처럼 획일화되고 간편화되어버린 관계의 편리함을 넘어서는 정신의 고고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매화 피어나는 계절이 되면 한 여인의 사랑과 한과 애절함이 못내 그리워집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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