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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도 꽃가지도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25일(화) 17:33
ⓒ 경북연합일보
하루해가 저물 듯,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밤은 지구가 태양에게 등을 보이는 시간, 돌아선다는 건 캄캄한 이별이다. 하루는 어제와 내일과 구분되며, 서로 얽히거나 되풀이 되지 않는 숙명적 이별과 만남으로 이어진다. 밤과 낮은 매일 준비된 이별을 한다. 그건 마치 오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오늘 한 생명이 지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삼라만상의 질서이며 현상이다. 그러나 느닷없는 이별은 폭력이다. 더구나 혈육 사이에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완강한 시간이 도처에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 작별은 소소하며 무심한 기다림이다. "잘 다녀와." 곧 보게 되는 작별은 이별보다 훨씬 친절하다. 다시 만날 기약조차 없는 죽음의 이별이 가장 아프다. 이별을 나누는 마지막 순간마저 유린당할 때, 그 아픔은 더욱 처절한 것이다.
 15세부터 50세까지를 생산가능인구로 분류한다. 이 나이의 세대가 가장 활발한 사회활동을 한다. 업무상의 재해사망 뿐 아니라, 교통사고 사망도 생산가능인구가 가장 높은 비율이다. 반면 노인들은 그다지 활동반경이 넓지 않다. 의학 발달과 영양섭취 균형으로 수명은 무척 길어졌다.
 늘어나는 요양병원마다 초고령자들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출산율은 세계 1위로 줄어든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죽음은 숭엄하지만 생산인구의 감소가 특별히 안타까운 이유다. 강릉에서는 선잠에 등교하고 한밤에 하교하던, 건장한 아이들이 고3의 압박에서 깨어나자 말자 그토록 원하던 늦잠에 들었다. 부모 형제들이 목이 터져라 외쳐도 깨울 수 없는 이들의 영원한 잠은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다. 대충주의자들이 가장 즐기는 안전불감증, 대한민국 고질병 때문이다. 이런 무책임한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운이 나빴다"거나, "팔자려니 생각하라" 끔찍한 무신경으로 내 가족만 아니면 그만이다.
 세월호 때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유가족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야유하고 그랬었다.우리는 강릉 사고 이전에 차마 못 잊을 소식 하나를 접했다. 작년, 지하철 역사에서 두 눈 뻔히 뜬 청년 하나를 가슴 미어지며 보냈는데, 올해도 이 사무치는 부음 앞에서 눈물도 죄송하다. 한 해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이 천 여 명에 이른다. 다친 후유증 등으로 앓다가 사망한 숫자까지 합하면 이 천 명을 웃돈다. 깔리고, 갈리고, 덮이고, 태워지고, 떨어지고, 유독가스에 숨이 막히는 모두가 우리 사회의 밑바탕 그림들이다. 그들이 부모로 물려받은 재산은 늘 목이 타는 마른우물 뿐이다. 그들은 언제라도 지워질 수 있는 연필로 그린 그림 같은 존재들이다. 덧칠을 하듯 건물이 완공되면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건물은 제 이름으로만 존재한다.
 거대한 기업의 기계들 틈에서 연약한 꽃가지 같았던 아비들의 죽음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 번도 몸통이 되어보지 못한 힘없는 가지에 올망졸망 맺혔던 꽃망울은 갈 곳을 잃고, 가난은 가난으로 대물림되는 슬픈 가계가 이어진다. 24살은 아직 풋 생명이다. 꽃망울을 두르는 꽃받침을 채 피우기도 전에 그는 갔다.
 지하철에 생목숨 하나 짓이겨졌듯, 또 멀쩡한 아이 하나가 우리 곁을 떠났다. 필시 가난해야만 얻는 직업,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라는 이름들이 퇴근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부자든 빈자든 자라나는 아이의 꿈은 모두 제 색을 간직한 꽃망울이다. 누군 금수저로 빛나는 황금꽃을 피우고, 누군 흙수저로 야생의 거친 꽃을 피운다.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며, 그 열매는 농익어서 또 몇 몇 씨앗을 퍼뜨린다. 그러나 다들 자꾸 떠난다. 사무침만 남겨두고 어디로 가는가, 꽃망울도 꽃가지도 지지를 말아라. 오지 못할 길은 가지를 말아라. 먼 먼 이별 말고, 아침에 다녀 오마든 작별을, "다녀왔습니다." 이 쉽고도 귀한 인사말.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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