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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옛집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20일(목) 20:49
ⓒ 경북연합일보
오늘도 그 집 앞에 섰다. 켄터키옛집 같은 옛집. 올려다보는 거실엔 환하게 불이 켜졌고 베란다엔 빨래가 드문드문 널려 있다. 지금쯤 저 안쪽에선 한 가족이 저녁상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겠다. 아니면 젊은 아낙이 지아비를 기다리며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을지도.
 가끔씩 H읍에 볼일이 있으면 오늘처럼 일부러 길을 돌아 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곤 한다. 빈 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4층 창문을 올려다보거나, 괜히 출입구 안쪽의 우편함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있기도 여러 번, 그러다 돌아설 땐 둥 뒤가 허전해서 자꾸만 뒤가 당겼다.
 한 동안은 퇴근하다 자주 옛날 집으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창을 바라보면 마음이 쓸쓸했다. 우리가 그를 버린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집을 데리고 갈 수도 없었으니. 시내로 주거를 옮기고 난 뒤 거의 일 년가량은 그곳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90년대 초에 지어진 터라 낡기도 했거니와 읍내로부터 외곽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는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때쯤부터 빨래가 널리고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반가웠던지.
 저 곳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웠다. 그동안 강산이 두 번 반이나 변했다. 이사 올 땐 새집에 대한 설렘보다 정든 집을 두고 간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짐을 다 옮기고 현관문을 닫을 땐 이 생에선 마지막이다 싶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4반세기를 웃고 울고 기쁘고 슬펐는데. 어느 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매일 20리터 물통을 너덧 개씩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또 어느 여름엔 태풍으로 밤새 베란다 창을 붙들고 씨름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문제로 부부가 다투는 일도 많았는데 한번은 아내가 집을 나가 꼬박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그땐 무슨 일로 그랬는지 잊어버렸다.
 시간은 인간을 그리움의 동물로 만든다. 지나간 것들은 다 옛집이다. 누구든 옛집을 가진다. 시간이란 옛집. 거기엔 그만 아는 고유한 삶이 있다. 혼자만 아는 시간과 사건과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들. 켜켜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세월의 무늬를 가만히 만져보는 일이란. 그러니 옛집은 언제든 찾아가면 낡은 앨범처럼 지나간 시절을 애틋하게 꺼내놓는다. 앉아서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출입구 화단엔 목련이 한 그루 있다. 3월이면 나무는 작고 앙증맞은 흰꽃몽오리를 피워 올렸다. 꽃을 보면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 한 구석에 흰 등불이 켜지곤 했다. 여름엔 길고양이들이 밤새도록 울어댔다. 더워서 창을 열어놓으면 울음소리는 안방으로, 부엌으로 마구 뛰어다녔다. 가을엔 아파트 뒤 야트막한 산에 자주 올랐다. 작은 그네가 있었는데 하릴없이 앉아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겨울엔, 가끔씩 눈이 내렸다. 이른 새벽 마당을 나가면 상형문자 같은 새 발자국이 놀이터까지 오종종 찍혀 있곤 했다.
 오늘도 나는 옛집이 바라보이는 골목에 차를 세우고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켄터키옛집에 햇빛 비치어 / 여름 날 검둥이 시절 / 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 /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 노나 /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옛집 / 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 / 그리운 저 켄터키옛집 위하여 머나먼 집 노래를 부르네 / 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 / 그리운 저 켄터키옛집 위하여 머나먼 집 노래를 부르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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