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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사랑 - love of my life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13일(목)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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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지금 극장가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의외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열풍에 대해 신문과 방송매체들은 릴레이 하듯 언급을 거듭하고 있다. 퀸 노래에 대한 추억을 지닌 40~50세대뿐만 아니라 20~30 세대들까지 영화관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떼창(싱어롱)을 할 수 있는 특별 이벤트가 진행되자 미국 언론에서 특별취재를 했으며 메리 오스틴은 한국인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최근 관람객수가 7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의 성공요인은 소수민족, 소수종교, 소수성애자가 음악을 통해 주류사회에 편승하기까지 고통과 비애와 연민이 노래로 감정이입이 되어 시너지효과를 가져 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자제를 하였지만. 아시다시피 프레디 머큐리는 이성애자이자 동성애자, 양성애자였다. 첫사랑 메리 오스틴과는 만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았지만 이십대 중반이후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창기 밴드만으로 생활이 어렵던 초창기 옷가게를 할 때부터 그랬었고 무대의상과 육체노출에서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결혼이야기가 나올 무렵 양성애자임을 고백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메리를 위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살다가 깨어지는 것 보다 순백의 사랑을 그대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메리 오스틴 또한 설득과 회유가 통하지 않자 프레디 머큐리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의 곁에서 밴드의 재정을 담당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돕는다. 퀸의 노래 중에 가장 감미로운 곡 'love of my life'는 프레디 머큐리가 그녀를 위해 만든, 그녀에게 바친 러브송이다.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가고 언젠가 철이 들면 돌아 갈게요 내가 아직까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라는 가사내용과 함께 기타 에드립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인 짐 허튼과 결혼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이른 45세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 임종을 지킨 사람은 짐 허튼이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죽으면서 메리 오스틴에게 자신이 살던 대저택과 저작료등 어마어마한 재산을 주면서 짐 허튼을 자기 집에 그대로 살게 하라고 유언을 남기지만 메리는 머큐리가 죽자 가차없이 짐 허튼을 내쫓아버리며 사랑하는 남자를 앗아간 남자에게 복수를 한다. 또 그녀에게 자기 무덤의 위치를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엄밀한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여러 사실로 보아 아마도 그녀를 부인으로 여겼고 영혼의 단짝이자 소울메이트로 여겼던 것 같다. 동성애자인 짐 허튼에게는 50만 파운드를 주었다고 한다. 집에서 일하던 주방장과 같은 금액이라고 한다. 기르던 고양이에게도 재산을 남겼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짐 허튼과는 육체적인 쾌락추구의 상대가 아니었을까. 필자가 음악다방에서 판돌이를 하던 스무살 시절 주인이 없으면 불륨을 높히기도 했던 하드락과 헤비메탈 음악들속에 퀸의 음악은 한참 뒤편에 있었던 것 같다. 퀸 음악의 특성은 다양성과 변화무쌍함이다. 틀에 박히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독창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뭐 이런 노래도 있어 라고 생각했던 노래가 오늘 때늦은 대박을 치고 있다. 아마도 영화를 계기로 저작권료가 수직 상승하지 않을까 싶다. 프레디 머큐리는 메리 오스틴에게 평생 쓰고도 남을 화수분 같은 재산을 선물하였다. 죽은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 있는 살아있는 메리 오스틴을 위해 love of my life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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