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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절터에 부는 새로운 바람
김환대 문화해설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02일(일)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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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경주에는 다른 도시 보다 수많은 신라시대의 절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많은 절터 가운데 새로운 계기가 되는 절터의 시굴과 발굴조사가 이루어 지고 있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절터가 그동안 폐허로 방치되고 있던 경주 황룡골에 황용사지입니다. 최근 이 절터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투조 기법의 금동귀면이 출토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금동귀면 외에도 사찰의 격을 나타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어서 앞으로 경주지역 불교유적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황룡골에 있는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지를 비롯해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승탑과 초석, 석축들이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가 이번 최근 시굴조사를 통해 이곳 동탑 기단 하단부에서 금동귀면이 확인됐고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문으로 누를 황자가 아닌 임금 황자가 새겨진 '기와'와 십이지신이 양각된 불상 대좌 하대석, 석조 불상, 소조불상 편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면서 황용사가 통일신라 시대 매우 융성했던 사찰이었을 것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경주지역에는 절터가 발굴 조사되어 정비되어진 경주도 있고 발굴조사이후에도 이렇다할 변화 없이 예전과 같이 방치가 되고 있는 경주도 있습니다. 워낙 많은 절터들이 있어 주목할 만한 성과나 또 여러 가지 행정력 부족으로 인해 별다른 변화 없이 있는 절터들도 아직 상당수에 있습니다. 근래에는 삼국유사에 황룡사 남쪽 미탄사의 남쪽에 최치원의 옛 집이 있었다며 '미탄사(味呑寺)'라는 사명만 기록되었던 미탄사지 삼층석탑 주변으로 발굴조사가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어 앞으로 신라왕경과 사찰 연구에서 새로운 학술자료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발굴조사 후 정비된 예로는 경주천관사지와 인용사지 현재 인왕동절터, 사천왕사지가 대표적인 발굴조사 후 유적지 정비가 이루어진 곳이고 현재도 발굴조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경주남산 아래 창림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지정 유적 가운데 아직도 관리대상인 곳은 드물며 그대로 방치된 곳이 많습니다. 그나마 안내판이 설치되어 문안이 있는 곳은 앞으로 정비도 차츰 이루어 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비하여 유명한 절터이지만 아직 외곽지역이라는 점과 다소 현재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열악한 절터 가운데 관리가 조금 더 행정적으로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은 장소 가운데 석장사지가 있습니다. 이 절터에서는 발굴 조사 후에 출토된 전(塼)으로 탑과 불상이 새겨진 탑상문전(塔像文塼)이 유명한 곳이고 『삼국유사』 기록에 양지(良志)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塼: 벽돌)을 경주 동국대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석장사지는 석장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장소이며 문헌기록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절터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역사적 장소로 다른 지역 같으며 벌써 지방지정 문화재로 지정되고도 남을 장소입니다. 기록도 확실하고 절터도 확실한 이곳을 앞으로 경주지역 절터 가운데 빨리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관심을 경주에서 받기 시작한 청와대 관저 뒤쪽에 있다가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의 출토지로 일부 추정되고 있는 도지동의 이거사지의 경우도 현장에 노출된 탑재 주변으로 하루 빨리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정비가 이루어져 보존 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현장을 다녀 가본 사람들의 아쉬움은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이며 경주 지역의 많은 유적 가운데 앞으로도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새로운 유물 출토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관리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림으로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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