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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무, 당신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1월 15일(목)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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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먼나무'하고 부르면 먼 곳의 당신이 내게 가지를 뻗어옵니다. 타원모양 잎을 내밀며 살짝 보조개도 피우며. '멀다'라는 건 그립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언젠가 내가 말했던가요. 멀어서 그립고 그리워서 먼, 먼나무에는 그런 애틋함이 있습니다. 언젠가 둘이서 붉은 열매가 자욱이 달린 나무 아래 서 있었지요. 늦가을이었고 남녘의 햇빛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오후였습니다. 그때 휘어지는 가지를 붙들며 "이게 뭔 나무죠?"하고 내가 가만히 물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둥글게 입을 오므리며 "먼나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요?" 나는 재차 물었고 "먼나무라니까요"라며 메아리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때 가만한 홍조가 살포시 당신의 볼에 스미는 것을 얼핏 보았던가 모르겠습니다. 상록활엽교목에 속하는 먼나무는 키가 10-15미터 정도로 자라며 정원수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도시공해에 잘 견뎌서 가로수나 공원에 많이 심기도 한다지요. 특히 제주도에 많이 분포하는데, 잎은 사철 푸르고 붉은 열매는 겨울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지요. 눈을 뒤집어쓴 사진 속 모습은 마치 흰 털모자를 쓴 듯 앙증맞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언제나 멀리 있었습니다. 베네치아, 로마, 몽마르뜨, 릴케, 까뮈, 기차, 수평선, 명왕성. 그것들은 멀어서 안타까웠고 안타까워서 다시 멀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신열처럼 <먼병>을 앓았지요. 몸은 여기에 있고 마음은 거기에 있는 병은 쉽게 치료약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나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얼굴 때문에 나의 사춘기는 늘 섬처럼 외로웠습니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초원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고 합니다. 오로지 먼 곳의 풀냄새를 기억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건기의 황무지를 건너갑니다. 마중물은 지하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 미지의 물을 데려옵니다.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있기나 한지도 알 수 없는 존재를 확신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일까요. 사막의 나무들은 땅속 수백 미터까지 뿌리를 내려 물을 찾는다고 합니다. 수시로 밀려드는 절망을 극복하며 오로지 한 모금의 희망을 얻기 위하여 지난한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린 너무 가까운 것들만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과 쾌락이 만연한 현대는 그래서 즉흥적이고 감각적입니다. 정신의 세계는 폄훼당하고 현상의 가치에만 주목합니다. 목전의 이익에 성급하며 삶을 관조하지 못하고 유유자적한 태도를 가지지 않습니다. 내일은 없고 오늘에만 집착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언젠가 나만의 정원을 갖는다면 먼나무를 심으리라 생각합니다. 겨울 내내 붉은 열매는 내게 향하는 당신의 마음이라 생각하며. 열매 위에 소복이 눈이 쌓이면 그 나무 아래 함께 가을오후를 거닐면 좋겠습니다. 그때 나는 그대를 보며 "이 나무가 뭔 나무에요?"라고 또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 가까운 이는 둥글게 입술을 오므리며 "먼나무입니다"라고 말하겠지요. 볼에 핑크뮬리 같은 노을을 물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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