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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1월 08일(목)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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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가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수덕사에 가보아라 하겠다. 아니, 수덕사 말고 수덕여관으로 가보아라 하겠다. 수덕여관에 가서 얽히고설킨 인과 연의 기구한 삶들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로 저물어 가는지를 반추해 보는 일도 좋을 것 같다. 이 가을이 적당할 것 같다. 수덕여관에는 근현대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들이 사랑방인 듯 모여 있다. 문학과 그림을 사랑한 사람들이 지금도 이야기꽃을 피우고 앉아있을 것 같다.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슬프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모두 수덕여관으로 가보자 그곳에서 만큼은 최소한 슬프다 따위의 말은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뜨거운 삶과 예술이 단풍 빛깔보다 더 붉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 곳에 가기 전에 우리는 몇 몇 사람들의 생애를 잠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신여성으로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불꽃같이 살다간 김원주와 나혜석의 뜨거움을 알아야 할 것이고, 여관을 사들인 고암 이응로와 여인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 일엽스님을 찾아 온 김태신을 알아야 하고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일일이 불러내기엔 지면이 너무 짧기만 하다. 스님이 되기전 일엽스님(김원주)은 여성해방론과 자유연애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신여자>라는 여성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였고 숱한 염문을 뿌리고 뜨거운 연애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수덕사에 와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스님인 사실을 알고 찾아온 열넷 살 소년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고 불러라 는 비정한 엄마를 원망하며 흘리던 눈물이 서려있는 곳이다. 나혜석이 친구 따라 스님이 되겠다고 찾아왔지만 거절당하고 여관에 머물고 있을 때 모정이 그리운 친구아들에게 젖가슴을 만지게 해주었던 그녀가 그리워했을 자식들을 생각해 본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쫓겨난 어머니의 오갈 데 없는 쓸쓸한 가슴언저리를 생각해본다. 나혜석의 파리찬가에 자극받은 고암 이응로가 젊은 연인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로 떠나버린 빈 마당에 쌓이던 달빛의 무게와 홀로 남은 조강지처의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된 고암을 뒷바라지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떠나버린 남자의 무심한 초상과 귀뚜라미가 실컷 울어댔을 여관마당 너럭바위에 알 듯 모를 듯 새겨놓은 추상그림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고, 붓으로 소원성취를 한 일당스님(김태신)은 67세 나이에도 어머니가 그리웠을까. 어머니를 따라 스님이 되고 싶었을까? 일엽스님이 모티브가 되었던 <수덕사의 여승>을 불렀던 가수 송춘희는 일엽스님과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귀의하고 만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노래 때문이었을까. 이렇듯 수덕여관에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뜨겁게 살다간 사람들의 스토리가 가득하다. 수덕여관 머물렀던 사람들 뒤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인문학관이 되기도 하고 우리 모두 인문학자가 되고 만다. 세상 어디에 이만한 스토리텔링들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은, 무형의 자산들로 가득한 수덕여관으로 가을여행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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