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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속내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1월 07일(수)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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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속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속마음이다. 마음이란 형체가 없으니 감출 수도 드러낼 수도 있다고들 생각한다. 마치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다. 만조의 밀물처럼 깊은 수심에 본심을 숨겨도 곧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물체가 아닌 정신으로 한 사람을 대표하는 구실이기에 그러하다. 평소에는 누구나 다들 그럭저럭 잘 지낸다. 그러나 어떤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다양한 사안 등을 나누거나, 뜻하지 않는 난관에 봉착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접고 상대에게 협조할 상태가 되었을 때, 바로 이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필자는 소설과 심리학, 정신학 책을 많이 접해서인지 모르지만 속내를 보는 일에 특히 민첩한 편이다. 이는 가족 간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때보다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나의 속내까지 거울처럼 되비추는 능력은 적잖이 피곤한 일이다. 한편 그런 역지사지의 관찰력이 없으면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소설 자체를 쓸 수가 없다. 속내는 마치 바다색 같은 거라서 푸른데 푸르지 않아 투명한 속이 들여다보인다. 며칠 전 나는 이 같은 남의 속내를 훤히 보며 곤혹스러웠다. 모든 이들에게 아주 다정다감한 이가 감춘 속내는 의외로 깊고 고약한 경우가 있다. 그는 자신이 제안하고 기획하지 않은 일에는 단박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망설임 없이 곧장 그런 표현을 하는 건 이미 속내의 가장자리까지 질투심이 채워졌을 때 가능하다. 속내에도 분명 경중의 무게감이 있다. 미간과 손끝에 먼저 드러나는 속내는 대체적으로 경박하다. 어쩌면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도 이 속내에 있지 않나 싶다. 아이들은 속내를 감추는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솔직한 것은 대체적으로 순수한 본질을 가졌다. 숨는 놈이 범인이라는 우스개가 지난 정권 말기에 회자되듯, 성격이 급하고 강파른 사람은 내숭의 속내에 무척 서툴러서 이내 탄로가 나고 만다. 솔직한 직언직설이 때론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 단점이지만, 이 단점으로는 절대로 사기를 치지 못하기에 장점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속내가 깊고 복잡할수록 그걸 감추기 위한 다중인격을 지니기 쉽다. 근데 아무리 감춰도 썰물에 드러나는 개펄처럼 속내는 본성을 나타내고 만다. 물이 빠진 개펄의 깊이를 남들이 모를 거라고 치부한다면 그건 양심불량이다. 어쩌면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혼자만 모르쇠로 가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는 누구나 건너고 싶은 평화롭고 잔잔한 수면 같았던 사람이 상대방의 우월성 앞에서 느닷없이 시샘에 불타오르는 건 곁에서 지켜보기가 참 딱하다. 대단히 중요하고 큰일도 아닌 사소한 일상의 습성이나 견해 따위에도 발끈하는 걸 보며 그가 평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숨겨 속내로 채우느라 애를 썼을까, 사뭇 가여워지는 것이다. 이런 이들의 특성은 남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며, 인기에 영합하려는 강한 의욕이 있다. "나"라는 정체성을 완성한 이는 타인의 시선이나 인기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정의에 관한 기본과 원칙이 분명하면 좌지우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습관적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에서 감추어진 자신의 속내를 미처 모를 수도 있다. 뭐든 지나치면 병이다. 자신의 성향을 너무 드러내도 탈이지만, 속내라는 꿍꿍이로 너무 감추어도 곤란하다. 전자는 용기에 칭찬 받으나 보이는 욕을 먹고, 후자는 감쪽같은 칭찬 받으나 숨은 욕을 먹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철학적 사유가 도리와 만날 때 사람관계는 올바르며 바람직해진다. 비생산적인 섣부른 질투는 저급한 심리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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