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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이별의 해법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30일(화)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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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무시무시한 뉴스가 연일 터진다. 이별 때문이란다. 이별의 원죄는 사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누구나 사랑을 해왔고, 누구나 이별을 했다. 그런데 이별이 불편하다고 피차의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궤변에 불과한 미친 짓이다. 이제 이쯤에서 우리는 왜 이런 뉴스들을 접해야하는지 차분히 돌아볼 때가 되었다.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관계를 맺으면 남자집의 귀신이 되어야한다던 관습적 풍토가 반세기 전에도 엄연히 존재했다. 처녀는 결혼하는 순간까지 순결성을 보존해야하고, 여러 처녀들을 함부로 짓밟은 총각은 전혀 흉이 되지 않는 세태였다. 다분히 남성우월주의의 가부장적인 문화는 21세기에도 유효하며, 그들이 지금 조부모와 부모라는 역할을 맡고 있다. 1남 1녀라는 표현에서부터 남아선호가 우선 시되며, 1차적인 모든 우선권은 남성에게 배분되는 사회다. 이별을 선고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폭행으로 끝내 여자는 무참히 살해되고, 이별을 통고하는 남자들은 방방곡곡에 건재하다. 이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던 남존여비 사상이 물려준 엄청 난 후폭풍이다. 여자의 이별 선고는 다른 남성과의 더러운 관계로 치부되고, 남자는 이별 후 어느 여자를 만나도 무방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우리 사회 저변에 분명히 남아있다. 여자를 여럿 거느리는 축첩이 부귀의 상징이던 조선시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남성성의 횡포다. 올 봄, 경북도청에서 시행하는 어느 교육장에서 필자가 들은 말이다. "요즘 미투로 야단이지요? 성추행, 만들면 뭐 끝이 없지요. 우리는 그런 거 남자라서 그려려니, 웃고 지납니다. 남자는 우리 여자캉 좀 다르다 아입니까? 맞지요? 으흐흐흐..." 대략 이 같은 이야기를 중년의 여성공무원이 너스레로 웃으며 말했다. 무던하고 인심 좋은(?) 강사의 버전에 객석에서는 "예! 하하하하" 마치 은밀하고 재미난 Y담을 상상하는 듯 가벼운 반응을 보였다. 정말,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그 순간 어떤 전율을 느꼈다. 그래, 맞아. 이런 세상이어서 한국의 남성들이 무책임한 성적취향을 가질 수 있었지. 3·40대 여성들도 간간이 있었지만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비논리가 인간적인 처세인 양 둔갑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대충주의에 질려서 구석구석 클레임을 잘 거는 나도 때론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여성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남성성의 횡포를 자인하고 용납하는 합의 앞에서 유구무언, 혼자 미친년이 되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주제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목숨 걸고 덤비는 것도 우스꽝스럽긴 매한가지다. 그런데 바로 이런 여자들이 남성을 짐승으로 길들이는 겁 없는 조련사들이다. 자신이나 자신의 딸이 물어 뜯겨 죽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침묵했던 내가 지금껏 두고두고 후회하는 장면이다. 동물적 힘의 논리인 남성성이 무한 확대 재생산되는데 여성들이 크게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변화해야 한다. "남자답게"라는 무소불위 성적 논리의 용납과 "여자답게"라는 연약한 순종의 구분부터 버려야한다. 힘이 약한 여성은 보호할 대상이지 때리고 죽일 상대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냥감이 아니다. 포획물처럼 여성을 획득하여 사기를 사랑으로 포장하며 고문에 들게 해선 안 된다. 사랑이라는 아름답고도 흔한 마술에도 모든 현상의 끝이 있다. 잘 헤어질 자신이 없는 자는 사랑할 자격조차 없다. 아들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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