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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8일(목)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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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파티션에 붙은 말의 혀들. 간결하고 직설적이며 단호하고 냉랭한 명령체의 문장은 일체의 미사여구를 허락하지 않는다. 포스트잇은 말이 종이의 형태로 진화한 최초의 사례이다. 아니면 종이가 말의 형태로 진화한 최초의 경우이거나. 언어의 아메바인. 직각을 가진 것들에게선 언제나 비장함이 감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스스로 날카로운 비수를 가져야하는 자의 기구한 운명. 그것도 네 개 씩이나. 허공을 찌르는 모서리, 얼음 같은 무릎을 만지면 전투의 냄새가 난다. 종전(終戰)이 없는. 저 얇은 수화들은 끊임없이 공중에다 대고 말을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차가운 표정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다, 허공을 가로젓다가, 주먹을 움켜쥐기도 하는. 그건 너무 미세해서 바람 한 점 일으키진 못하지만. 그래서 더 절실하고 강렬한지도. 말의 부적. 세상을 배회하는 말들의 이마 위에 '척' 부쳐진 인스턴트형 주문(呪文). 천방지축인 강시의 이마 위에 부쳐진 부적처럼. 어릴 적, 해가 바뀌면 집 대들보며 방에는 새로운 부적이 부쳐지곤 했다. 난해한 붉은 상형문자는 볼 때마다 어떤 두려움과 힘이 느껴졌다.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을 가진. 포스트잇이 촘촘하게 붙은 벽을 본적이 있다. 절망의 벽, 좌절의 벽, 그러나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벽, 수천수만 개의 빨갛고 노랗고 푸른 함성이 붙은 벽을 보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어떤 간절함이 들려오곤 했다. 안타깝고, 슬프고, 아픈. 갖가지 사연들로 장식된 장엄한 파노라마. 보고 싶다. 사랑한다. 기다릴게. 그때 벽은 하나의 거대한 연민이어서. 언어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파리한 이파리들. 잎맥이 선명한 말의 몸짓들. 자음보단 모음이 강한 단어들.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리는 짧은 문장들. 결연하면서 쓸쓸한 생각의 분신들. 소리의 무덤들. 더러는 책갈피 사이에서, 낭떠러지 같은 책상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끝내 낙엽처럼 뒹굴다 잊히고 마는 망각의 입들. 마침내 새가 되는 깃털들, 포스트잇이 가득 붙은 곳을 지날 때 들었던 새의 날갯짓. 푸득푸득, 어디론가 날아가는, 골목으로, 건물 꼭대기로, 산 위로, 바다 너머로,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별까지. 그 별을 지나 우주 끝까지. 지금 한 장의 포스트잇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노란 정처 없음. 이정표를 잃어버린 길의 분깃을 들고 본다. 거기 거울처럼 비치는 낯선 행려자의 모습. 말을 걸고 싶은, 그러나 침묵하고 마는. 모든 말은 끝내 말없음이라는. 실어증에 걸린 시간의 낱알, 삼엽충 같은 말의 화석, 더듬거리는, 최초의 옹알이거나 최후의 유언이거나. 이방의 도시를 떠돌다 돌아온 나그네의 발자국 같은, 풍경의 편린. 오래 손때가 묻은, 색 바래인 어느 날의 밑줄인. 말이었으나 말이 아닌. 창을 열자 팔랑거리며 책상 아래로 떨어지는 낡은 묵시록. 발음(發音)을 잊어버린 저 말의 각질은 오늘도 초라한 언어의 자화상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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