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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방형대좌 석불좌상 '경주 이거사'로 돌아오나
모로가 히사오의 일제강점기 자료 '신라사적고'에서 밝혀져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장 빛이 난다"
원위치 논란 종지부 고향인 경주로 반환 여부 '관심 집중'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6일(화)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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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청와대 '경주 방형대좌(方形臺座) 석불좌상'이 본래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車寺)터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책자가 16일 공개돼 원위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경주반환이 조만간 실현될까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청와대 석불좌상(일명 미남석불)으로 널리 알려진 이 석불은 청와대 경내 보안구역에 소재하며, 지난 4월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된 바 있다.
|  | | | ↑↑ 경주방형대좌석불좌상. | | ⓒ 경북연합일보 | | 이 신라 불상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이 경주 고다이라(小平) 자택에서 본 뒤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 원위치를 두고 이거사터가 유력했으나, 일부에서는 경주 남산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었다. 지난 2011년 별세한 이근직 경주대 교수의 부인 주진옥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관리팀장이 16일 연합뉴스에 제공한 일제강점기 자료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에 따르면 "도지리(道只里) 이거사터 항목에 다이쇼(大正) 2년(1913) 중에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항목이 있다. 임경택 전북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 글을 "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지난 다이쇼 2년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후광(장식)이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번역했다. 신라사적고는 1933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사오(諸鹿央雄)가 다이쇼 5년(1916)에 출판한 책이다. 모로가는 경주 금관총 발굴에도 관여했던 만큼 당시 경주 문화재 사정에 누구보다도 밝았으며, 더구나 청와대 석불좌상의 반출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인물이다. |  | | | ↑↑ 신라사적고. | | ⓒ 경북연합일보 | |
이거사터 관련 부분은 이근직 교수가 일본 덴리(天理)도서관 소장 서적을 복사해 보관해 왔다고 한다. 모로가 히사오가 이거사터 석불좌상 이전 시기로 적시한 때와 청와대 불상이 옮겨진 시점이 일치하고, 현재 이거사터에 모로가가 묘사한 그대로 석탑 기단부와 옥개석 일부가 남아 있다는 점으로 미뤄 책에 기술된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거사는 경주 시가지 동남쪽에 있는 절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성덕왕이 재위 35년(736)에 죽자 "시호를 성덕(聖德)이라 하고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전한다.청와대 불상이 본래 이거사에 있었음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료가 발견되면서 불상의 경주 이전과 이거사터 정비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 석불의 재평가와 경주이전의 검토를 관계당국에 지시한 바 있다. 경주지역에서는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대표 김윤근 경주문화원장)가 경주시, 경주시의회와 경주 반환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구성을 합의하는 등 이 불상의 경주반환운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하지만 조계종단에서는 지난해 불상의 역사적 가치가 조명되고 원위치에 대한 연구를 거쳐 신앙적 환경이 조성된 뒤에 옮겨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불상 원위치가 이거사터로 확인되는 상황이라 출토지 불명을 이유로 경주이전을 반대했던 목소리는 설득력이 없어졌다. 경주운동본부 김윤근 대표는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장 빛이 난다"면서 "청와대 불상의 대좌 중에 없었던 중대석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 중으로 확인돼 석불 본체 반환 시 함께 반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석탑 부재가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사실상 방치된 이거사터를 정비해 불상을 조성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  | | | ↑↑ 현재의 경주 도지동 이거사터. | | ⓒ 경북연합일보 | |
경주운동본부는 이거사터 정비 복원을 위한 조례 제정 및 예산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을 닮아 '미남불'로도 불리는 청와대 불상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 너비 86㎝로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이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모습과 풍부한 양감이 인상적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형 대좌 대신 사각형 연화(蓮華)대좌가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1913년 서울 남산 총독관저에 갔다가 1939년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현 청와대)가 세워지면서 다시 이전됐고, 서울시 유형문화재를 거쳐 보물로 지정됐다. 강병찬 기자 kbc@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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