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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5) 나태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6일(화) 19:10
ⓒ 경북연합일보
'베버리지 보고서(영국)'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결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를 5대 사회악으로 분류했다.
 게으름,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것이 나태다. 이유 없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가 많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한낱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아주 부지런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악한 반노동법의 현장에서 산업화의 승승장구로 세계 10위권 경제성장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지금은 노년세대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나태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언어였다. 물건은 오래되면 골동품으로 귀중한 취급을 받지만, 노동력을 상실한 노년세대는 적잖이 서글픈 환경이다. 더구나 그 때의 아버지들은 넉살이나 주변머리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 진 자의 의무인 양 묵묵히 죽으라고 일하다 백발만 성성해진 오늘을 맞은 것이다. 간혹 누가 농담으로라도 '삼식이'를 거론할 때면 나는 무참히 마음이 쓰리다. 세 끼 아니라 네 다섯 끼라도 그들은 요구할 수 있을 만큼의 피땀을 흘렸다. 새벽에 나가서 한 밤중이나 더러는 새벽에 귀가하던 가혹한 노동시간이었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이나 가정교육 따위는 사치스런 호들갑 같았다. 소처럼 노예처럼 일만 하던 아버지와 아버지라는 존재감조차 모른 채 자란 아이들은 거의가 교감하지 못했고, 그냥 생물학적 가족관계이기도 했다.
 반세기 전에 비해 우리 사회는 아주 다양화되고, 엄격한 출퇴근시간과 가족중심으로 시간이 주어진다. 조금씩 선진국형으로 틀을 잡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주변의 몇 몇 주부는 가정에서 전혀 요리를 하지 않는다. 마흔 초반인 이들은 하루 몇 시간 시간제 근무로 오후 2시경 퇴근임에도 가족을 위한 상차림엔 관심이 없다. 모든 음식은 반찬가게에서 사오거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한마디로 나태의 극치다. 그들의 아이들은 늘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는 것 같았다.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를 사지 않는 주부들의 나태야말로 사회악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요즘 이런 집이 허다하다고들 말한다. 수 년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주부는 독일주부들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하루 평균 8시간 30분. 인구 3만에서 5만 명 정도의 지방자치에 적합한 소도시가 많은 독일에서 남편들이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걸 당연히 여겼다. 하루 세 끼를 정찬으로 차리는 모습을 보며 한국주부들이 의외로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외식은 친구들 모임이나 특별한 날에만 했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아주 생활화되어 있었다.
 백의민족이던 우리보다 유럽인들이 순백의 면(cotton)을 즐겨 사용했다. 모든 침대시트는 다 흰 무명천이었고, 바지와 와이셔츠나 티셔츠도 순면을 입었다. 도시 곳곳을 둘러봐도 세탁소를 찾을 수 없었다. 버드나무로 엮어 만든 한 아름의 소쿠리엔 매일 다림질거리가 가득했다. 매 끼니마다 바뀌는 식탁보와 침대시트 등은 자동다리미 기계가 해결했지만, 옷들은 모두 주부들이 직접 다려야했다. 아이가 셋인 그 집의 다림질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평균 이 삼백 평 대지의 단독주택이 대다수인 주택의 구조는 우리들 살림규모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지하층부터 2, 3층으로 지어져 우리 식으로 보면 거의 상가주택처럼 크다. 집집마다 손님용 객실을 한 층 씩 가지고 있어 화장실, 분리된 욕실이 서너 개씩인데 의사부인도 시장부인도 손수 청소했다. 1년에 한두 번 도우미를 불러 유리창이랑 대청소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의 부부모임에서 부인들의 손이 모두 갈퀴처럼 거칠었다. 우리처럼 전후복구를 일군 독일인의 성실함은 세계가 인정한다. 사치보다 내실을 찾는 실리적 국민성이 무척 부럽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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