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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무하마드 깐수 그리고 정수일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1일(목)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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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2017년 경상북도가 후원하고 동국대에서 주관하는 실크로드문명교류사 답사과정을 6개월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이 분야에 유명한 학자 교수를 비롯한 명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답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정수일 교수(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팔십 중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다시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강의 후에는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다. 우리들에게 아랍사와 실크로드 문명교류사의 눈높이를 넓혀주고 높혀준 고마우신 분이다. 솔직히 이쪽 분야는 이희수교수 등 몇 분을 제외하면 전문가가 많지 않다. 서구와 기독교 중심의 세계사를 배워온 기성세대들의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동양사와 서양사 사이에 아랍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가운데 두면 균형과 중심이 맞춰질 것이다. 솔직히 아랍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관심하고 문외한이었던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일 것이다. 나 또한 실크로드 공부를 하면서부터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책 몇 권 더 읽었을 뿐인 얄팍함이 전부이다. 정수일교수의 학문적 성과는 혁혁하다. 실크로드의 기착지를 중국 서안이 아닌 신라의 경주까지이며, 처용설화의 주인공이 동서무역의 주역인 아랍인이라는 주장과 실크로드 사전과 같은 수많은 저서들은 목마름을 채워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의 샘물과 다름없다. 지나온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펴보면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연변에서 태어나 중국 국비유학생으로 카이로대학에서 유학하고 중국외교부에서 근무하다가 북한으로 들어갔다. 평양외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10여 년간 해외에서 활동한 그의 특출한 능력과 아랍인을 닮은 외모로 레바논계 필리핀인 무하마드 깐수로 위장 입국하였다.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생활을 했다. 결혼한 부인조차 남파위장간첩임을 몰랐다고 한다. 북으로 전송한 내용들이 크게 가치있는 것들이 아니였음이 다행이었을까 만약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사형선고라도 받았더라면 볼 수 없었던 그의 저서들은 후대들에게는 크나큰 손실이었으리라. 사법부가 내린 용단에도 그의 학문적인 영향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12개 나라의 말을 할 수 있는 학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등 그가 번역한 많은 책들과 그가 집필한 <신라 서역교류사> <고대문명교류사> <이슬람문명> <실크로드학> <실크로드사전> 등은 우리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은 한편의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다산이 그러했고 추사가 그러했듯이 민족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은 모두 고통의 세월속에서 태어났다. 정수일교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로한 나이에도 강의와 집필을 계속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기 때문이다. 북에 아내가 있고 딸이 셋 있는 분단의 역사 한가운데 그가 있다. 문명교류학자 이전에 민족주의자임을 그가 늘 강조하는 말속에 담겨있다 "민족이 있어야 언어가 있고 문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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