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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기부천사 유난곡 여사를 기리며…
'경주인의 꿈과 미래'위해 평생을 남기고 떠난 참다운 예인 유난곡 여사
우리 문화 속 민족혼 이어가기 위해 전답 3만평과 '육영과 국악진흥' 유지 남겨
김성혜 경북문화재전문위원 논문 발표·김영희 전시의원 '유난곡상' 제정 촉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17일(월) 19:29
ⓒ 경북연합일보
"기차 내달리는 황성철교 아래, 형산강 물 유유히 흘러간다. 작은 절벽 어깨에 가파른 나무계단, 천당 오르는 길이 이토록 가깝다. 이승 떠나는 발길 너무 무거워, 일백년을 홀로 머무시는가. 이름 하나 없는 묘석 처량하여도, 아이 없는 여인의 자식이 모래알처럼 많다."

ⓒ 경북연합일보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황성철교 초입 언덕 위에는 경주 기부천사 유난곡(兪蘭谷) 여사가 잠들어 있다. 검정 바탕의 비석엔 '兪蘭谷女史之墓(유난곡 여사의 묘)' 뚜렷한데, 무덤 앞 묘석에는 후손의 이름도 없고, 아무런 문자도 없다. 비석 뒷면에 다만 유여사의 약사가 한자 반 한글 반으로 기록돼 있다.
 형산강 가 언덕 위 양지바른 이곳에는 일 년에 한번 8월10일(음력)에 조영제 대자원장과 경주시 공무원들이 음식을 차리고 술을 따른다고 한다. 얼마 전 현곡면사무소에서 벌초를 해서 주변이 제법 말끔하다. 올해는 오는 19일 이채경 경주시 문화재과장이 초헌관, 조영제 대자원장이 아헌관, 이영걸 문화재정책팀장이 종헌관을 맡아 분향을 한다.
 산소를 오르는 입구에는 황성철교 좌측 지하도에 경주시가 나무길을 만들어 두었다. 나무길은 작은 절벽을 타고 가파르게 황성철교와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로 오른다. 나무길이 끝나고 오솔길을 잠시만 오르면 유여사의 묘소이다. 평생 모은 전답 3만평 등 전 재산을 경주시에 선뜻 기부하고 떠난 유난곡 여사는 이렇게 홀로 잠들어 있다. 묘소는 동천동에서 이곳으로 1984년 옮겨 왔다.
 김성혜 경북도문화재전문위원이 2010년 발표한 '경주의 유난곡과 동도국악원의 활동' 논문에는 "유난곡은 1861년경에 출생하였고, 19세에 경주읍성 밖의 달성 서씨에 출가했으나, 일찍 남편을 잃었고 슬하에 자녀는 없었던 것 같다.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경주에서 가무악(歌舞樂)으로 활동하던 명기(名妓)였다. 그녀는 일평생 모은 전 재산을 1940년 임종 전에 육영사업과 국악 진흥을 위해 사용되도록 경주읍에 기증하고 그해 8월5일 영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경북연합일보

◆ 그루터기에서 새줄기 솟아나
 경주읍에서는 1942년 기증자산 전부로 재단법인 난곡보육재단을 설립하고 사립경주유치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유여사가 남긴 재단 소유의 농토는 1949년 농지개혁법 시행으로 전부 분배 대상이 되고, 대지와 건물은 고적지 정화구역에 편입됨으로써 유치원 운영은 중단됐다. 1942년 설립된 '난곡보육재단'이 '서라벌국악원'과 함께 육영을 위해 세웠던 경주(귀도)유치원의 운영도 멈췄다.
 큰 나무가 베이고 그루터기만 남았지만 거기서 새줄기가 솟아났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지인이었던 조경규(조인좌) 선생은 유난곡이 생전에 국악애호가였던 까닭에 그 뜻을 받들어 국악인 양성에 활용코자 1958년에 난곡보육재단을 재설립하고 1965년 '동도국악원'을 개설해 고인의 원을 풀어 주었다.
 동도국악원은 규모를 키워 '서라벌국악원'으로 거듭났고, 운영은 조경규 선생이 맡아 국악인 지도와 양성을 위해 전국적으로 이름난 지도자를 영입해 지도에 임했다.
 1988년에 조영제 대자원장이 이를 계승해 운영하던중 2001년에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장순애(장월중선), 박기자 명창이 강사로 활약했다. 지금도 그들의 후계자 정순임 명창이 경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돼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유여사 유지는 후세들의 과제
 유여사가 기부한 전답 3만평을 평당 100만원으로 어림해 셈하면, 요새 돈으로 300억 원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 가운데 이름 석 자 뚜렷이 남기는 사람이 드문데, 유여사는 큰 재산과 함께 '육영과 국악진흥'을 유지로 남겼다.
 유여사가 일본인 경주읍장에게 전 재산을 맡기면서도 '국악진흥'을 유지로 남긴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의 문화예술 속에 민족혼이 있고, 기상이 샘솟고, '저녁이 있는 삶'이 담겨 있다.
 이렇게 자식 하나 없었던 유여사는 경주의 모든 후손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유여사는 자신이 평생 품었던 '경주인의 꿈과 미래'를 이 재산을 밑천삼아 반드시 이룩해달라는 숙명적인 과제를 후세에게 던졌다.
 유여사의 생애는 물론 사후 또한 격동의 시대였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기승을 부렸고,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해방의 기쁨도 잠시, 동족상잔 한국전쟁이 이어졌다. 가장 치열했던 전장터였던 한반도는 전쟁의 참화로 지독한 가난이 엄습했다. 전쟁 후에도 나라는 분열과 싸움으로 매우 어지러웠다.
 유여사는 해방과 전쟁과 가난이라는 미래를 예견하고서 재산들을 남겼을까.
 인류에게 닥친 극심했던 재난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지름길이 바로 재산과 교육과 예술임은 이미 증명된 명제이다.
 김영희 전 경주시의원은 지난해 '유난곡상'을 제정해줄 것을 경주시에 요구한 바 있다. 김 전의원은 "힘겨웠던 일제치하에서 평생 모은 돈을 육영사업과 국악진흥을 위해 기부한 참다운 예인(藝人)인 유난곡 여사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억하고, 높이 받들어 이 시대 기부문화의 귀감으로 존경을 받게 하자"고 호소했다.
  강병찬 기자 kbc@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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