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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신전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06일(목) 18:49
ⓒ 경북연합일보
텃밭은 초록의 신전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텃밭엔 채소들이 열심히 잎을 피우고 있었다. 고추는 온통 붉게 물들었고 가지는 굵은 소시지처럼 매달렸다. 땅 속에 자라는 고구마는 보지 않아도 튼실할 테고 상치며 깻잎, 근대는 오랜만의 인기척이 반가운 듯 둥근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경배하듯 찰진 이랑에 쪼그려 앉는다.
 올 여름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고 한다. 연일 찌는 날씨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숨이 막혀 바깥출입을 자제한 채 여름과 사투를 벌였다. 종일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원해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런 날씨 탓에 심어놓고도 제대로 돌볼 수 없어 거의 수확을 포기한 상태였다. 사력을 다했을 채소들의 고군분투에 새삼 경외감이 들었다.
 생명의 힘은 때로 상상력을 초월한다. 하긴 고등동물인 인간보다 하류동물인 미물들이 더 오래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다지 않는가. 저 하찮게 여긴 채소조차 자신의 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한여름 내내 덥다는 핑계로 나는 얼마나 게을렀던가. 책읽기며 글을 놓고 있었던 것은 물론 날씨가 선선해지면 하자며 집안일도 팽개쳤다. 그러는 동안 몸은 나태해지고 정신은 녹이 슬었다. 단 한 개의 잎도 달지 못한 채.
 근대와 상치와 깻잎을 솎았다. 가지와 고추도 수확했다. 제법 어린아이 손바닥만 해진 잎을 딸 땐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찌는 더위 속에서도 푸른 잎과 열매들을 피워 올릴 수 있겠는가. 두 손을 벌려 말씀을 받듯 잎과 과실을 따 바구니에 담았다.
 텃밭을 가지게 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굳이 노자의 무위자연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자연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크다. 뿌린 대로 거두며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의 가치와 비교할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극히 일부일 뿐인데도 지배하려하고 과소평가하며 인위적 훼손을 가한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로 무렵엔 배추도 심고 뒤이어 고구마도 수확해야한다. 서리 내리기 전 양파와 마늘도 심는다. 24절기는 옛 조상들이 농사를 위해 만들어놓은 연중일정표이다. 때를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신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대지(大知)는 자연이요 무위이다. 또한 큰 지식이요 열린 마음가짐이다. 소지(小知)는 인간이요, 인위이다. 또한 작은 지식이요, 닫힌 마음가짐이다. * 장자의 소요유에 관한 개념이다. 한 생각 깨우치고 나니 마음 한켠이 밝아진다. 제법 선선해진 9월의 하늘로 장끼 한 마리 후두둑 날아간다.
* 윤재근 著 <우화로 즐기는 莊子>에서 인용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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