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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비와 슬픔
이화리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29일(수) 19:16
ⓒ 경북연합일보
모든 계절은 그냥 오지 않는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책갈피처럼 비가 들어있다. 늘 그랬다. 그리고 비는 생각을 깊게 만든다. 빗소리를 들으며 사람마다 마음이 젖게 마련이다. 비는 제 무게 때문에 스스로 무겁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아래로 가라앉는다. 비 오는 날 막 흥겹고 쨍한 명랑함이 사라지는 이유다. 비는 한 계절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대한 준엄한 반성문을 독촉하는지 모른다.
 자연은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다. 삶에도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이 고루 존재한다. 혹한의 추위를 밀어내는 부드러운 보슬비는 막 움트는 풋것들을 위해 모성의 절제된 몸짓으로 내린다.
 비가 그치면 씨눈들의 아버지 같은 봄바람은 막바지 겨울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용감해진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비는 곡식과 열매를 충분히 익히느라 체면을 차린다. 간간이 내리는 가랑비 그치면 온 산과 들이 붉고 노란 채색의 옷을 입는다.
 태풍은 대다수 수확이전에 다녀가고, 갈무리 때면 바람도 무르익은 들의 향기에 취한다. 겨울 초입에 비가 내리면서 기온은 급강하로 떨어져 동장군의 출현을 예고한다. 들은 텅 비어 겨울바람의 횡포를 견뎌주며 긴 잠에 든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또 봄이 오고, 겨울이 가고, 그렇게 세월은 간다. 우리의 한 생도 이렇게 사등분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 같다. 봄처럼 영문 모를 꿈에 부풀고, 여름처럼 작열하는 청춘의 한 때를 보내고, 가을처럼 영근 중년을 맞아 쭉정이를 골라내는 성찰을 가지고, 겨울엔 나목이나 빈 밭처럼 비우고 초연해지는 것이다.
 삶에 정답이 없듯 70억 지구인의 행로는 각기 다르다. 계절과 계절의 사이를 두부모 자르듯 양분하지 못하듯 삶 역시 의외의 뜻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절망의 바람에 거칠게 떠밀리기도 하고, 희망의 양지에서 마냥 기뻐하기도 한다. 태양이 늘 떠 있기만 한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살아남지 못한다. 구름이 있어 비가 내리고, 바람과 천둥번개는 뼈아픈 충고처럼 느닷없이 온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사이의 곡예가 곧 삶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경주는 장대비가 거세다. 지독했던 여름의 폭염에 대한 보상처럼 제대로 내리 퍼붓는다. 몹시도 목이 탔던 땅심까지 뚫을 기세의 빗줄기에 나는 어떤 슬픔으로 깊이 젖고 있다.
 6년 동안 많이 아프던 이가 어제 오후 유명을 달리했다. 80여 회의 항암치료는 인간이 버티기에 불가항력적인 고통이었을 것이다.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그악스런 구토, 머리카락이 다 흘러내리고, 발톱까지 빠져 걸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했으나 생명은 그 분 몫이 아니었다. 평균수명에 비해 아직 늙지 않은 그 분은 음악을 사랑하고, 한 음악가를 사랑했다. 불편한 걸음걸이에 기침을 참으며, 겨우 세 번의 공연을 보았다. 더 이상 외출을 못한 그 분은 생명이 삭아가는 고통 속에서 음악가의 초상화를 그렸다. 참 잘 그렸다. 그래서 나는 더 슬프다.
 질병의 고통에서 인간의 한계는 어떤 경지까지 통과하게 될까? 감기몸살에도 만사가 귀찮고 심하면 가족에게 짜증을 낸다. 눈에 티 하나가 들어가도 무척 불편하고, 손톱 아래 연한 가시 하나만 끼어도 못 견뎌한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 과다투입의 연명과 임종을 맞는 순간은 산자의 상상력으로 논할 수 없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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