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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은 고유의 민속놀이인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28일(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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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정현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 | ⓒ 경북연합일보 | |
각저총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씨름하는 장면이다. 두 장사가 씨름을 하고 있고 지팡이를 든 노인이 심판을 본다. 이 벽화고분을 우리는 각저총이라고 한다. 생소한 이름이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각저총은 별자리와 관련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스물여덟 개로 나누어 28수라 한다. 28수를 다시 일곱 개씩 네 구역으로 나누어 동서남북으로 배치했는데, 그 28수 중 동쪽의 일곱 별자리에는 각·항·저·방·심·미·기가 있다. '각저'는 바로 동쪽 일곱 별자리 중 으뜸별인 각수와 저수를 말한다. 각저총을 보면 고구려시대에 이미 씨름이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씨름은 조상들이 즐겨하던 놀이겸 의식이었다. 5월 단오나 칠월 백중, 그리고 8월 추석 등의 명절에 씨름은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씨름은 한민족 고유의 놀이였을까? 그렇지 않다. 씨름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여러 민족의 의례에 등장한다. 한나라 사람들도 씨름을 즐겼다는 것이 『후한서』에 나온다. 부여왕이 한나라를 방문하자 환영행사를 열었다. 그 행사 중에 여러 놀이가 있는데, 그 중 각저희(角抵戱)라는 것이 있다. 각저희는 각력희(角力戱)·각희(角戱)·상박(相撲) 등으로도 불렸는데, 씨름의 일종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씨름을 치우희(蚩尤戱)라고도 한다. 그래서 대한 씨름협회에서는 씨름이 치우천왕과 관련된 것처럼 설명한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신소도, 그러니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인 소도(蘇塗)에서 행하던 제사 예식 중 하나로 보았다. 각저총 씨름도가 그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신단수 아래 곰과 호랑이가 있고 그 옆에서 씨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려사』를 보면 씨름이 고려시대에도 매우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혜왕(忠惠王)이 나랏일을 총신들에게 맡기고 매일 궁중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소동들과 씨름을 하여 위와 아래가 없더라.'고 할 정도였다. 왕이 씨름을 얼마나 좋아 했으며 나랏일까지 팽개치고 놀았을까. 왜 씨름이라 했을까 그렇다면 씨름이라는 명칭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순수한 우리말일까? 씨름은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씨름은 몽골에서는 '썬렘'이라고 한다. 씨름과 발음이 비슷하다. 왜 씨름이라고 했는지에 관한 학설은 여럿 있다. '씨'는 성의 씨(氏)를 상징하는 말로 남자의 존칭이며, 겨룸, 판가름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름'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씨름'이라 했다는 설도 있고, 영남지방에 힘을 견주어 버틴다는 사투리에 '씨룬다'는 말이 있음을 들어 '씨룬다'에서 씨름의 어원을 찾기도 한다. 영남지방에서는 서로 버티고 힘을 주고 겨루어보라는 뜻으로 한 번 '씨루어 봐라'라는 말이 있고, 또 오랫동안 버티고 있다는 말을 '되게 씨룬다' 또는 '되게 씨루네'라고 한다. 이로 보아 씨름이라는 말은 동사 '씨룬다'에서 씨룸→씨름으로 명사화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씨름은 중국·몽골·우리나라 등 동북아 사람들이 즐기던 운동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힘을 겨루는 투기 운동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별다른 무기가 없던 시대에 맹수나 다른 종족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힘과 체력으로 싸워 이겨야만 했다. '브흐'라고 하는 몽골씨름도 있고, '스모'라고 하는 일본씨름도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고학 자료로 볼 때 씨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일 먼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이 남긴 점토판을 보면 황소와 싸우는 영웅들의 그림이 많다. 그것이 씨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원전 2500년경에 수메르에서 제작된 청동기를 보면 오늘날 우리가 하는 씨름과 거의 100%로 동일하다. 이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씨름의 기원이 수메르 쪽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실제로 우리문화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화가 비슷한 것들이 많고, 그래서 그러한 관점에서 연구한 책들도 여러 권 있다. 이집트에서도 씨름이 유행했다. 나일강 상류지역에 있는 기원전 2200년경의 파라오 무덤에는 200건이 넘는 씨름도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불경인 『법화경』에도 씨름이 나오고, 인도에는 바위에 부처님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도 있다. 이런 자료들로 보아 유라시아 전역의 고대인들이 씨름을 즐겼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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