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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연합일보 2018 기획취재] 천단의 원형 홍산문화를 찾아서… 하늘과 소통하기 위해 세운 '천단'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05일(일)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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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올 여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폭염으로 전국이 뜨거운 가운데도 사람들은 길을 나선다. 배낭을 꾸리며 내면의 세계를 들여 다 보게 된다. 매월당 김시습은 조선팔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정치적 울분을 풀었고, 토정 이지함은은 쇠갓을 쓰고 전국을 쏘다녔다. 고산자 김정호는 조선팔도를 세 번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 오르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남자는 울고 싶을 때 길을 나서고 여자는 쓸쓸할 때 길을 나선다고 한다. 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신라얼문연이 중국에 남아 있는 우리 고대사를 찾아 확인하는 과정은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  | | | ⓒ 경북연합일보 | 북경을 여행하는 사람들 중 빼놓지 않고 찾는 곳 중 하나가 천단이다. 신라얼문화연구원이 방문했을 때도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단은 국가 5A급 관광지이자 전국 중점 문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천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이다. 하늘에 있는 상제(上帝)의 아들(天子)인 황제가 하늘에 있는 당신의 아버지와 소통하던 곳이다.
 |  | | | ⓒ 경북연합일보 |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 북경의 상징이 된 자금성은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 때 건설됐다. 자금성을 건설하면서 그 옆에 하늘과 땅, 일월성신에 제사지낼 제단도 함께 만든 것이 지금의 천단이다. 1406년에 시작해 영락제 18년인 1420년에 완공됐다. 처음에는 천지단(天地壇)으로 불리다가 후에 지단(地壇)을 만들면서 이름을 천단(天壇)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흔히 '천원지방'이라고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한다. 천단 앞쪽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이 있고 뒤에 땅에 제사지내는 지단인 기년전(祈年殿)을 만들어 천원지방의 제단을 만들고 그 좌우에 해와 달 등 여러 천신을 모시는 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라고 알고 있는 천원지방의 제단을 쌓고 제의를 지내던 문화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홍산문화'시기에 이미 있었다. 지금부터 5000년 이상 이전에 중국의 요서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천원지방의 제의문화를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5000여 년 전 홍산문화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의 조상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후기 홍산문화(기원전3500~3000년)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곰을 토템으로 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 북경에 세워진 천단은 홍산문화 시기부터 이어져온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고고학회 회장을 지냈고, 홍산문화의 발굴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소병기(蘇秉琦)도 홍산문화의 원형제단은 북경 천단의 원구단과 닮았고 방형제단은 천단의 기년전의 터와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북경 천단의 원구단의 평면도를 보면 그 수리가 9수의 배수로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9수 문화의 원형도 홍산문화 유물에 많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니까 원구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문화는 홍산문화에서 기원했고, 단군신화의 웅녀족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문화원형 속에 살아 움직이는 문화인 셈이다. 원구단은 삼원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이 3층으로 구성돼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그 또한 홍산문화의 천단에서 비롯됐으며 그러한 의식은 한민족의 의식 속에 면면히 이어오다. 3층탑을 조성하는데 반영되기도 했다. 감은사지 삼층탑 동남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신단수가 한 그루 있다. 동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그 제단의 모습도 삼원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국은 자신들이 황제국임을 자처하면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리는 하늘의 아들이자 천자인 황제만이 지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처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을 섬겼던 우리의 문화를 가져다가 자신들의 권리라고 하면서 우리의 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 것은 참 아이러니한 논리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공식적으로 천제를 지낼 수 없었다. 그러다 조선말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제일 먼저 마련한 것이 원구단이다. 지금 서울에 있는 조선호텔 앞에 있었다. 그 원구단의 모습이 북경의 천단을 닮았다. 우리도 황제를 선포했으니 원구단을 짓고 하늘에 제사 지낼 권리가 생겼다는 상징적 선포였다. 통일이 되면 우리도 멋진 원구단을 짓고 하늘에 천제를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 속 천제를 지냈던 흔적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천제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원래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자손이다. 천손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 뜻을 하늘에 전달하려면 천제를 지내야한다. 그래서 천손민족으로 하늘에 천제를 지내던 흔적은 도처에 남아 있다. 강화도 마니산에 가면 단군시대에 단군이 만들었다는 참성단이 있다. 단군들이 면면히 이어오며 천제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도 개천절에 민간인 주도로 참성단에서 천제를 지낸다. 신라 때 서라벌에서 가장 먼저 절을 세운 천경림도 사실은 하늘과 소통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소도(蘇塗)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솟대가 있다. 소도 문화의 잔재이다. 경주시 동부사적지에 있는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천문관측기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첨성대는 과거 제단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8세기의 '동사 강목(1758년)에는 첨성대에서 '천문을 묻고 요사한 기운을 살폈다'라고 기록돼 있다. 후대의 현대 과학자들은 역사 기록에 나타난 '천문을 묻던' 구조물이라는 의미를 바로 '천체현상을 관측하던 천문대로 이해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묻는' 행위와 현대의 천문학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활동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대 사회에서 '천문'이란 현대 천문학에서와 같이 '객관적인 천체 현상'과는 다르게 '하늘의 뜻'을 의미했던 것이다. 따라서 '천문을 묻는 행위는 지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늘 신에게 인간들의 바람을 기원하는 제례(제사를 지내는 의례) 행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과거에 천문대는 제단이었고, 천문관측활동은 제례의 과정이었을 것이라 추정해본다. 포항시에는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초엽 박인량(朴寅亮)이 엮은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던 것으로, 지금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수록되어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에 신라땅 동쪽 일월동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157년(신라 아달라왕 4) 미역을 따러 나간 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도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 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지내라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 이로부터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지금의 영일만)이라 하였다. 이렇듯 명·청시대에 중국의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도 알고 보면 우리민족과 깊은 연관이 있는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답사단 일행은 천손민족의 후예로 하늘을 섬기던 우리들의 정신문화를 북경 천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나는 기행이었다. 김희동 기자 khd@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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