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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야기
김영식 시인,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01일(수)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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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희뿌옇게 새벽이 밝자마자 부리나케 공터로 나갔다. 땡감을 줍기 위해서였다. 수령이 오십 년은 훨씬 넘었을 나무는 간밤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은 날엔 어김없이 열매를 떨어뜨렸다. 울타리 안쪽에 떨어진 것은 나무막대기를 이용해 주웠고 풀숲에 숨은 것들은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어떤 날은 내가 가장 먼저여서 여남은 개를 줍기도 했지만 늦게 일어난 날엔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떫은 감은 장독에 보관했다. 보리쌀을 담아놓은 옹기 속에 넣어 일주일 정도 지나면 물렁하게 삭았다. 잘 익은 홍시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주전부리가 귀하던 시절인지라 제법 인기가 있었다. 호시탐탐 노리는 동생들과 자주 쟁탈전이 벌어졌다. 아침 밥상을 물리기 바쁘게 해변으로 내려갔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바닷물은 입술이 파래질 만큼 차가웠다. 저마다 망태기 하나씩 둘러메고 해초를 땄다. 청각, 서슬, 우뭇가사리로 금세 넘쳐났다. 우뭇가사리는 무게를 달아 상인에게 팔았고 청각과 서슬은 집으로 가지고 왔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여름반찬으론 별미였다. 망태기를 갯바위에 묶어 놓곤 본격적인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설익은 사과며 복숭아 몇 개가 풍덩, 다이빙을 하면 뒤이어 하나, 둘, 셋,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둥둥 파도 따라 떠내려가는 아이들 자멱질 소리가 8월의 해변에 가득 찼다. 아침나절부터 시작된 멱감기는 한낮까지 계속되었다. 두어 시간 물속에서 놀다 지치면 백사장으로 나왔다. 서로 편을 갈라 모래성 쌓기와 모래공 박기놀이를 했다. 지는 쪽에서 맞은 편 바위까지 업어줘야 했다. 놀이가 싫증나면 모래밭에 뒹굴면서 몸을 태웠다. 여름이 끝날 때쯤엔 온 몸이 뱀처럼 덕지덕지 허물을 벗었다. 집으로 오는 길엔 까마중 열매를 따먹었다. 고욤 같은 그것은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한 움큼씩 따먹으면 낮 동안의 허기가 살짝 채워지곤 했다. 입술이 새까매진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아프리카아이들처럼 웃었다. 여치나 메뚜기잡기는 피날레 놀이였다. 메뚜긴 방아깨비가 제일 컸다. 다른 애들은 그걸 집으로 가져가 구워먹었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네댓 번 방아를 찍게 하곤 풀밭에 놓아주었다. 잡은 여치는 짚으로 만든 여치집에 넣었다. 창끝에 달아놓으면 바람에 흔들리면서 찌르르, 찌르르 우는소리를 냈다. 매미소리와 어울리면 선풍기처럼 시원했다. 할머니는 철썩철썩 등짝을 때리며 등목을 시켰다. 당신은 우렁우렁 커가는 손자들이 마냥 기특하기만 했다. 마루에선 맨드라미보다 붉은 수박화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원한 우물물에 재어놓은 화채는 더위를 이기는데 최고의 간식이었다. 저녁엔 낮 동안 흩어졌던 가족들이 평상에 모여 앉았다. 화톳불을 피워놓고 삶은 옥수수를 먹었다. 밤하늘 가득 모래 같은 별들이 쏟아졌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릴없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골목 끝까지 퍼져갔다 되돌아오곤 했다. 설핏 잠든 귓가로 풀벌레소리가 귓밥을 간질였다. 어제보다 더 많아진 쌕새기와 베짱이, 꼽등이, 여치가 합주를 했다. 살짝 이불깃을 당겨 덮는 건 무더위 속에서도 이미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어느새 통통해진 대추알속으로 여름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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