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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과 한씨조선의 뿌리 공간을 찾아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7월 15일(일) 20:33
ⓒ 경북연합일보
경북연합일보는 우리 역사가 요서지역에서 단군조선이 출발했다는 관점을 갖고 2018 기획 취재를 했다.
 단군조선은 동북지역 최고의 신석기 문화 지역인 홍산문화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 그 단군조선의 핵심 세력인 환웅세력으로 추정되는 공공족의 초기 거주지가 북경시 밀운현 공공성(共工城)이다.
 그 공공성 유지를 취재했다. 또한 주나라 이후에 성립된 일명 기자조선은 얼마 후 한씨조선으로 바뀌는데 그 한씨조선의 주역들이 고조선 지역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살던 북경시 고안현대한채일촌도 살려봤다. 그 곳은 시경에 '한국(韓國)'으로 기록된 곳이다. 본보는 매주 한차례 '단군조선과 한씨조선의 뿌리 공간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환웅의 첫 거주지 북경 공공성을 찾아서… 상고사 연구는 한민족 정체성 회복의 길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문명을 일구었다. 그 이동과정에 문화는 전파되고 인류의 이동과 함께 문화와 역사는 흘러왔다. 현재의 중국 땅은 분명 한민족의 고대사 영역이다. 그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신라얼문화연구원(이하 얼문연)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 나흘간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조상들의 뿌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 정현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은 재야 학자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조상들의 뿌리를 추적했다.
 신석기가 도래하면서 발생한 유라시아 문명사를 아우르며 우리 문화 속에 박제돼 전해 오는 여러 문화 코드를 유라시아의 문화 코드들과 연결시켜 연구하고 있다.

ⓒ 경북연합일보
◆ 공공족(共工族)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고조선은 堯(요)임금 말년에 건국되었다. 현재 우리가 쓰는 단기연호가 기원전 2333년으로 결정된 것도 그러한 사실과 연결돼 조선시대에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사기' 등 중국 문헌에 보면 요임금 말년에 북경지역인 유릉(幽陵)으로 중원에서 집단 이주한 종족이 있다. 바로 공공씨(共工氏)다. 그들은 중원지역으로 내려온 황제계와 공존하면서도 갈등을 일으킨 대표적인 세력이었다.
 고조선 건국 이전에 중국 요순(堯舜)시대에 '공공족'이 있었다. 중국 고문헌에서 상고시대를 무대로 '공공족'이 등장한다. 공공족은 사기, 서경, 회남자, 상해경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황제계와 충돌하는 세력으로 요임금 말년에 동북쪽으로 쫓겨났고 황제 이후 화화족이 중원을 장악할 때도 계속 걸림돌이 됐다.
 정형진 원장은 그들 공공족이 환웅세력들이라고 주장한다. 고조선은 동북지역 신석기 문화 지역인 홍산문화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 그 단군조선의 핵심 세력인 환웅세력으로 추정되는 공공족의 초기 거주지가 북경시 밀운현 공공성(共工城)이다. 공공족의 이동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그들과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정 원장이 공공족을 한민족과 결부시키는 데는 황룡사 목조 9층탑 건립을 제안한 자장의 말이 실마리가 됐다. 신라 승려 자장이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즉위 5년인 당나라 태종 정관 10년 병신(636)에 자장법사가 중국으로 유학 가서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수법(授法)을 감득했는데-자세한 것은 '본전'에 있다.-문수보살은 또 말했다.
 "너희 국왕은 인도의 찰리종족(刹利種族)의 왕인데 이미 불기(佛記)를 받았으므로 남다른 인연이 있으며, 동이 공공(共工)의 종족과는 같지 않다."
 여기서 신라 왕족을 가리키는 찰리 종족은 석가모니와 동일한 종족인 사카족을 뜻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스키타이 중 사카라고 불린 사람들이 인도에 정착했는데, 신라 왕족이 바로 그 계통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공공족은 신라 김씨 왕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 사로국을 주도했던 진한인들을 이르는 것으로 간주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직도 정확히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기원전 2333년경에 건국했다는 단군조선의 무대가 어디였으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건국되었는지도 정립되지 못한 실정이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지역의 요하문명은 중국 황하문명 못지않은 대단한 뛰어난 신석기 문화임이 밝혀졌다. 더구나 요하문명의 후반기에 성립된 홍산문화는 곰 토템 부족이 주도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우리 건군신화의 무대가 드러난 셈이다.
 
ⓒ 경북연합일보
 ◆ 4300여 년 전 공공성을 찾아서
 여행은 삶의 길에서 잠시 멈춰 비우고 채우기 위해 길 떠나는 것이다. 7월 1일 얼문연 일행은 오전 7시 쯤 길을 나섰다. 이번 답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가슴 설레었던 것은빀우리 민족이 상고사의 주 무대였던 공공씨가 한원(韓原)에서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흔적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밀운현(密雲縣)은 환웅세력(공공씨)이 동북지역에 최초로 뿌리 내린 지역으로 북경에서 공공성까지는 67km이다. 밀운현은 화북평원 최북단 도시로 이곳은 전설시대 이후 처음으로 특정세력(공공씨)이 세력화한 정치적 중심지이다.
 '밀운현지'에도 "(요임금 말년에) 순이 공공을 유릉으로 유배를 보냈는데, 공공이 밀운현 연락촌 남쪽에 공공성을 짓고 살았다. 이렇게 해서 유릉이 자연스럽게 밀운현의 가장 이른 이름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공공성은 하북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성 유적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 이곳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공공성을 찾아 가는 도로가에는 우리나라 8~90년대 가로수로 심겨졌던 플라타너스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나무의 밑둥치에서부터 1.5m 정도 높이에 회칠을 해뒀는데 이 회칠은 벌레를 방지하고 밤에는 가로등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공공성이 있는 밀운현은 현재는 북경시에 속해 있으나 과거에는 단주(檀州)로 불렸다. 현재 중국의 수도가 북경인 것도 알고 보면 이러한 공간적 중요성과 역사적 인연 때문에 선택된 곳이다.
 그곳은 동북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상고시대에는 동북지역의 중심지였지만, 명나라에 이르면 연산산맥을 남북으로 한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는 중심지로 선택받게 된다.
 밀운현 공공성은 정형진 원장이 두 차례 답사를 했던 곳이라 1시간 30여분을 달려 수월하게 찾아 갈 수 있었다. 공공성 연락촌 가운데 있는 운봉산(雲峰山)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위산의 형태였다.
 한민족과 산은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산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산의 역사와 문화가 독특하게 연결돼 왔다.
 그 결과 우리의 산은 자연과 생태의 산보다는 역사의 산, 문화의 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해 왔다. 한국의 등산 인구가 1천500만 명이라고 한다. 국토의 70%가 산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지리적 특성 탓에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산과 관계를 맺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선을 두는 곳도, 발걸음을 향하는 곳도 모두 산이다.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산을 신성시 하는 유전적 인자가 있다. 그래서 옛 도읍지를 정할 때 언제나 산이 등장한다.
 고조선은 태백산 아래 터를 잡았고 신라는 서라벌 남쪽에 남산이 있다.
고려의 개경에는 송악산, 조선의 한양에는 인왕산, 현재 청와대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위산이다. 여름 녹음이 우거진 산에 보이는 바위들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시간의 흔적과 문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일행에게 잠시 고향 남산을 떠 올리는 감동을 주었다.
 끝없는 연봉으로 이어진 산들이 춤추듯이 잇대어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동북쪽으로 이주한 공공씨의 후손이 이상향으로 여기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보였다.
 공공씨가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때는 지금보다 온도가 높았다. 따라서 당시에는 지금보다 수량도 많았을 것이고, 산에는 많은 동물이 살았을 것이다.
 또한 들에서는 한원에서 가지고 온 선진 농업기술을 적용해 더 많은 곡물을 생산했을 것이다. 한동안 그들은 연산산맥이 잇대어 춤추고 수량이 풍부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풍요롭게 살았을 것이며, 점차 동북쪽으로 진출해 동북지역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활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희동 기자
     khd@kbyn.co.kr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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