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공원 내 현충시설
'경주 황성공원에서 나라사랑을 배운다'
황성공원은 경주시 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공원 안에는 공설운동장, 높이 16m의 김유신 장군 동상, 박목월 시비 등이 있으며, 공원 주위는 온통 숲으로 덮여있다.
현충시설로 충혼탑,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위령탑, 무공수훈자전공비, 6·25참전 월남전참전 명예선양비, 경주임난의사추모탑, 박무의공비 등 다양한 현충시설이 있다.
경북에는 현충시설이 283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현충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경주 현충탑
경주 충혼탑은 1986년 건립했으며 경역 면적은 624평이며 기단 높이 1.2m 탑 높이 22.8m이다.
새해 기관단체장들이 숭고한 호국정신과 고귀한 넋을 기리며 힘찬 다짐을 위해 참배를 하기도 한다.
최근 6·13 지방선거 운동을 전개하기 전 출마자들은 충혼탑에 참배를 하고 선거운동을 펼치며 승리를 다짐했다.
해마다 6월 6일에는 가신님의 넋을 위로하는 향불을 피우며 시민들은 애국선열들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한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위령탑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우리 경주에서도 수많은 민간인들이 정치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 적법한 절차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경주유족회가 2016년 경주시의 예산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리고자 '위령탑'을 건립했다.
위령비에는 '칠십여 성상이 흘러간 지금,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희생자 860여 위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며, 인명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함은 물론이요, 나아가 세계평화와 국민화합을 지향하는 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이 곳 영령들이시여! 부디 고이 영면하소서!' 라고 새겨져 있다.
△6·25전쟁, 월남전 무공수훈자전공비
무공수훈자전공비는 동족상잔의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이들을 기리고 세계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월남 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들을 기리기 위한 전공비다.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훈을 세운 경주지역 출신 무공 및 보국 수훈자들의 빛나는 공훈과 호국정신을 기리고 그 분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2001년에 건립하고 2015년에 현재 장소로 이전 정비한 현충시설물이다.
△6·25참전 월남전참전 명예선양비
6·25한국전쟁 당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참전용사들의 애국충절을 기리고, 월남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정신을 본받기 위해 명예선양비를 세웠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 분들의 값진 희생정신 위에 세워졌다.
전후세대와 청소년들이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본받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굳건히 지킬 것을 바라며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이름을 새겼다.
△경주임난의사추모탑
임란의사들의 애국을 위한 항쟁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높은 기개와 구국정신을 귀감으로 삼으려 2001년 6월 6일 준공과 함께 추모행사를 거행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왜적들이 우리 한반도에 물밀듯이 쳐들어와 마침내 경주성까지 함락당하고 조국강토가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있을 때 나라를 지키려는 구국의 일념으로 의병들이 뭉쳤다.
6월 9일 경주 문천에서 '蚊川會盟' 으로 조국을 살린 위대한 의거의 횃불로 피어났다.
'경주임란의사추모사업회'가 의사들의 애국활동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임란의사들의 애국정신은 우리 후손들에게 옳음의 뜻을 새롭게 다짐하고 국난을 극복하는 민족혼의 바탕이 되고 있다.
오는 9일 오전 10시 경주임난의사추모공원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
△박무의공비(朴武毅公碑)
조선 중기의 무신 박의장(朴毅長)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861년(철종 12)에 건립한 비석으로, 황성공원 남쪽 비각 안에 놓여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건물이며, 비석은 화강암 재질에 높이 2.3m, 너비 89㎝, 두께 34㎝이다.
박무의공은 임진왜란때 경주부 판관으로 왜적에게 빼앗겼던 경주성 탈환전에 참전해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이어 7년 동안이나 경주에서 왜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해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승진시켰다.
그 후 박의장이 영중에서 세상을 뜨자, 조정에서는 무의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김희동 기자 khd@kby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