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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발사 김진호씨, 55년째 걸어온 가위손 인생
42년째 경주의 거리에 스며들어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추억의 공간
별빛처럼 따뜻한 풍경속에서 만나는
오랜 친구, 혹은 아버지 같은 이발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5월 27일(일) 18:30
ⓒ 경북연합일보
이발사라는 직업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종황제는 1895년 단발령을 내려 백성들의 머리를 깎게 하였으나 많은 선비들이 "내 목을 칠지언정 내 머리를 깎을 수는 없다"고 하며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우리나라는 단발령이 내려진 1895년 이후부터 이발사가 나타나는데 최초의 이발사는 왕실에서 일한 '안종호'였다고 한다.
 이발소라고 하면 시간이 멈춰 버렸을 것 같은 낡고 오래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 간 이발소는 햇살의 입자들이 가득한 따뜻한 곳이었다. 커다란 난로위의 양철통에서는 물이 데워지면서 수증기가 올라가고 이발소 벽에는 사계절의 풍경을 담은 동양화 몇 점이 비스듬히 걸려 있어야 한다.

◆ 행복한 이발사 김진호 씨
 유년의 빛바랜 기억을 더듬으며 42년간 경주문화의 거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김진호(68) 이발사의 일터를 찾았다.
 경주에서 지난해부터 황리단길과 봉황로 프리마켓이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가장 핫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나 경주가 서울 인사동을 밴치마킹한 봉황로 문화의 거리 북쪽, 홍살문을 세워 둔 곳부터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문화의 거리 안쪽에 김진호 씨가 운영하고 있는 '신라 이용원'이 있다. 흰색과 파란색, 붉은색이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등이 이곳이 이발소라는 것을 알려 준다. 실내의 공기를 환기 시키려는 듯 문 받침대를 살짝 끼워 놓은 틈으로 이발소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어서, 어서 들어오소"
 김진호 씨의 크고 굵은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주인장의 환대에 아주 오랜만에 찾은 이발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유년시절 대여섯살 때 만났던 이발소 아저씨의 큰 덩치에 놀라 아버지 손을 꼭 잡으며 뒷걸음질 쳤던 것처럼 김 씨의 큰 목소리에 잠깐 놀랐다. 깨끗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고 있는 신라 이용원은 5월 숲속처럼 청량감을 주어 또 한번 놀랐다. 시골장터 부근 어디쯤 뿌옇게 흐려진 유리거울, 낡고 야들해진 가죽의자, 타일이 무더기로 떨어진 세면대의 이발소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사흘 뒤 6월 27일(음5월12일) 경주 충효동에서 2남 2녀중 맏이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그가 살아온 모든 인생의 내력이 압축돼 있음을 느꼈다. 흔히 말하는 가난한 농부의 맏이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부산에서 이발소 보조부터 일을 배우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며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김 씨의 과거와 현재가 한 시간여 짧은 시간에 쓰나미로 밀려들어 왔다. 그 이야기 사이사이 자식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이런 말 하는 것 싫어하지만" 이라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1남 1녀의 자녀들은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를 나와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일까 힘들게 보내왔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데도 그에게서 열등감이라든지 위축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 새로운 도전 붓글씨 입문
 이발소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이발소 그림이다. 신라 이용원에도 많은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겨울풍경의 산수화, 부귀를 가져다주는 목단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사본과 김 씨의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때 서예대회에서 수상한 작품과 김 씨의 서예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는 "개미 그림은 단골이 펜으로 그려 준 그림인데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늘 가까이에 두고 마음을 다 잡는다"고 그림 설명을 했다.
 경주 시내에는 8~90년대만 해도 미용실을 사이에 두고 이발소가 20여군데가 성행했다. 차름 한해 한군데씩 문들 닫더니 이제는 2개 정도 남아 있다.
 이발소가 사행사업이 되면서 김씨도 5개의 의자 중 3개만 사용하고 두 개는 사용하지 않는다. 3년 전 그 중 한 개 의자에 나무 판을 얹어 놓고 서예도구를 마련하고 책상으로 사용하며 독학으로 서예 공부를 하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글귀는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는 말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하고 여순감옥에 있는 동안에 여러 점의 붓글씨를 남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다"며 "안 의사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넘치는 것이 그의 맑은 정신과 강한 기상이 담겨져 있어 앞으로 남은 시간은 붓글씨를 익히며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오랜 친구 같은 이발소
 김 씨는 1976년부터 문화의 거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경주 중심상가의 발전과 쇠퇴를 모두 지켜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에서 영업을 하고 자녀들을 키우며 또 떠나갔다"며 "언제든지 이길을 찾았을 때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도 이곳을 지키며 영업을 할 생각이다" 고 웃으며 말했다.
 안강에 사는 최석환(64)씨는 중앙시장 장날을 맞아 경주 시내에 나왔다가 아내와 함께 이발소를 찾았다.
 잠시 이발의자에 몸을 누인 채 노련한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머리를 깎으며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잠시 추억에 잠겨 쉬어간다.
 이발소 텔레비전 옆에 이발 도구를 놓아두는 바구니에는 최신식 가위와 빗이 목 뒤 머리칼을 정리하는 칼등 이발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주인의 손때와 함께 묻어 있었다. 이발소를 찾는 손님들을 친구나 가족처럼 대한다.
 최석환 씨의 머리를 마무리 해주는 데서 이발소와 미용실의 다른 점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헤어드라이기다.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미용실에는 크고 오리주둥이 같은 헤어드라이가 있는데 이곳에는 뒤가 둥글고 앞이 길쭉한 모양의 남성용 헤어드라이가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굳이 헤어 드라이기 정도였다. 염색도 하고 퍼머도 해준다며 기자에게도 언제 조용할 때 머리를 해 주겠다며 앞머리는 드라이 하지 말고 생머리로 두는 것이 훨씬 젊어 보인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신라 이용원의 휴일은 7일, 17일, 27일 이다. 휴일에는 아내와 나들이도 하고 서울 사는 딸 집에도 놀러 간다며 "한 달에 3번 정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고 말하며 노 이발사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래전 이발소에서 주파수가 잘 맞지 않아 치칙대던 라디오 대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정답고 이발소 풍경은 별빛처럼 따스했다.
 김희동 기자 khd@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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