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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기획/특집
나무의 시간 위 흑백의 이야기 그려 넣다
전진은 작가 '판 갤러리' 인기
300여 점 목판원본·목판화 전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4월 11일(수) 19:46
황남동 한옥지구가 경주 문화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급부상하고 있다. 한복대여점, 카페와 음식점 등 젊은이들의 문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미술관이 문을 열고 있다.
 최근 인문학적 미술관 '판 갤러리'가 문을 열어 관광객은 물론 특히 해외에서 온 여행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향토 출신 목판화가 전진은(경주·59) 작가가 직접 제작한 300여점의 목판원본과 목판화를 전통 한옥의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 경주시 포석로 1050번길 33의 동화속 풍경같은 전진은 목판화 갤러리 전경.
ⓒ 경북연합일보
■공감, 흑백의 순수함
 와불로 누운 나무판 위로 정직한 스케치와 간절한 칼질이 묵언 수행중이다. 잉크나 먹을 받고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흑백의 순수함은 직립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
↑↑ 전진은 작가.
ⓒ 경북연합일보
 목판화가 전진은, 최근 몇 년 사이 얻은 또 다른 이름이다. 흑백의 상형문자를 종일 해독하고 있는 그는 목판화가다. 그가 생각하는 목판의 매력은 0과 1로 만든 별천지가 인터넷과 지금의 세상이듯 흑과 백이 만드는 목판화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 황남동 사람들 Whang Nam Village1 (60x90cm)
ⓒ 경북연합일보
 노서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오랫동안 타향에서 교육사업을 하다 어머니의 발병을 기화로 경주에 정착해 24시간 노모를 간병하면서 목판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귀한 목판원본은 지난 5년간 무려 300여점에 이른다. 목판화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집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화단의 문을 두드린 지난해 '신라미술대전 특선(어머니의 마음)' '강원 미술대전 특선(기다림)' '원주 전통판화 공모전 우수상(문수보살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목판화의 계보가 중단된 국내 화단에 과거와 미래를 이어줄 든든한 버팀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판 갤러리, 인문학적 미술관
 전진은 작가는 지난 11월초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남부교회 뒤 포석로 1050번길에 경주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된 한옥을 직접 수리하기 시작했다. 약 5개월의 고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아담한 미니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전 작가는 갤러리 방문객 누구에게나 손끝으로 목판원본의 나무 질감을 직접 느껴보도록 권한다. 상세한 설명과 곁들여 방문객들에게 살아있는 갤러리, 소통하는 갤러리가 되도록 운영하고 있다. 또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전공을 살려 영어로 설명을 해주며 작품감상과 함께 선물용 엽서, 액자소품을 판매하며 목판화 배우기 수강생도 모집하고 있다.
 사실 경주는 그간 역사와 한옥지구를 표방하면서도 이번에 문을 연 '판 갤러리'처럼 몸으로 직접 체감하는 살아있는 문화 공간이 거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전 작가는 "문화와 역사를 내세우면서도 사실 경주는 문화 불모지이다"며 "이는 경주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 관광지로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 모두에게 큰 불행이다" 고 말한다.
 또 "관광객들의 주머니만 바라보는 얕은 상혼에서 벗어나 한 집 건너 한 집이 보고 듣고 체감하고 배워가는 문화관광 도시로 경주의 관광정책 키워드를 바꾸지 않는 한, 지진 이후 모처럼 부활된 경주를 향한 행렬은 머지않아 물이 마를 지도 모른다"며 "저의 이런 도전이 고향 경주를 진정한 관광의 메카로 만드는 데 작은 씨가 되고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양각으로 도드라진 사람 사는 이야기
 전진은 작가의 판 갤러리에는 장터에서 웃고 있는 아낙의 모습, 황남동 할머니의 대작, 한옥과 불교적 색체의 목판들, 그리고 이국적인 아프리카 연작시리즈와 재즈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전통·인물·아프리카·재즈·자연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작가는 스스로의 작품들을 '인문학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그림들이, 목판원본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랬다. 늘 보아왔으나 잊고 살았던 정감과 이야기가 흑백의 표면에서 우러나온다. 고향을 찾아, 고향 같은 곳을 찾아 온 모두에게 '판 갤러리'는 작은 순간이나마 사유의 공간이 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작가는 "가깝게는 '황남동 사람들과 경주를 주제로 한 연작 시리즈 제작이며, 멀리는 전국의 사찰을 비롯해 한국 정취 가득한 목판 원본 천여점을 제작하여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발견되기를 기다린다. 해거름에 앉아 반가운 이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우리는 모두 때를 기다리는 나그네와 같다. 경주시가 바로 이런 작업에 감동하고 공감하는 문화와 소통의 장이 되는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김희동 기자 khd@kbyn.co.kr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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