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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4월 05일(목)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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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이 말라버린 자리에는 외로움이 있었다. 온 들을 가득 채운 황토 빛 잔해사이로 낮은 겨울 햇빛이 사정없이 파고들어 그나마 남아있던 습기마저 앗아가고 나면 들판은 이제 한겨울을 예감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그 품 깊이 꼭꼭 거두어 들였다. 서너 달이나 계속되던 마른 겨울은 기어코 모든 웅덩이의 바닥을 들여다보고야 말았고 계곡 어디 돌 틈에라도 얼음 조각이 보이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지경이었으므로, 곡절 없이는 나타날 리가 만무하던 시장이 수행원이 모는 차 뒷자리에 앉아 횅하니 댐을 한 바퀴 도는 일이 TV에 나온 것도 다 그 탓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사람의 숨을 배배 말리듯 쥐어틀더니 삼월에 들어 때 아닌 진눈깨비 같은 눈비가 일주일씩이나 추적거렸고 새벽에 잠이 깨어 넘어질까 조심조심 옥상으로 기어올라 처음 보는 눈인양 그 눈송이를 손에 가득 받아본 것도 따지자면 다 이해할 만한 일 아닌가? 절기가 되어도 봄은 아직 움직일 기미가 없었음으로 하늘의 신이 동장군의 마지막 잔재들을 한꺼번에 쓸어 밀어버린 듯, 그렇게 한바탕 눈이 내린 뒤 봄은 수줍은 새댁처럼 우리 곁을 찾아왔다. 밤새 성큼. 봄이다. 꽃이다. 이제는 온 동네가 다 사람이다. 옷이 짧아지고 얇아지고 밝아졌다. 가게들은 온 문을 열어젖히고 봄이 살짝 데워놓은 공기를 실내로 끌어들이고 그 공기와 더불어 밀어닥친 낮선 얼굴들이 가게 어디에나 가득 앉았다. 누가 특별히 시킨 것도 아닌데 얼굴마다 옅은 웃음기가 배어나온다. 봄바람이 여인들의 머리카락을 살짝이라도 건드릴 때마다 라벤더, 민트, 허브같은 싱그러운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온다. 봄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았다. 시간이, 아니 봄이 우리를 쫓아온 것이다. 가자! 기왕에 봄이 왔으니, 겨우내 우리를 쫓아 다닌 촛불의 환영과 어깨를 짓누르던 온갖 어두운 기억들과 곰팡내 나는 장판 뒤의 칙칙함일랑 다 잊어버리고 소매도 가볍게 치맛자락도 밝게 이왕에 온 봄을 즐겨보자꾸나. 나뭇가지 마다 틔워내는 연초록의 신비와, 지붕이며 처마며 전봇대며 어디든 경쾌한 비상으로 뛰어다니는 참새들의 짹짹거림을 배우자. 자연이, 아니 봄이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돌아보니 지난 가을부터 시작하여 짧은 동안에 참 모질고도 큰일들이 많았다. 선글라스 촌뜨기와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촛불시위, 대통령 퇴진,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과 취임, 중국의 사스보복, 대통령 선거, 대통령 취임, 김정은의 간 큰 장난질, 가상화폐 열풍, 평창 올림픽, 최근 들불처럼 번져온 미투 운동, 그리고 남북간의 해빙무드에 이르기까지. 다행스럽게도 한반도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평양 공연도 성공리에 끝나고 남북은 손잡고 뜨겁게 내린 봄을 맞이하고 있다. 자, 그러니 내일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는 몰라도 오늘은 그저 편안하게 봄을 즐기고 음미해 보자는 말이다. 하루 일을 마친 새댁의 곤한 잠자리처럼 우리도 그렇게 봄과 꿈에 빠져보자. 봄은 봄이되 누리지 않으면 어찌 그것을 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전진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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