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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波紋)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4월 04일(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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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어머니가 모종을 심는다. 가르마처럼 반듯해진 이랑마다 어린생명들이 줄지어 선다. 고추며 가지, 대파 등이 여남은 평가량 되는 채전밭에 가득 찬다. 저 초록들은 이제 저마다 뿌리를 내어 생존해나갈 것이다. 미지의 땅속으로 퍼져나가는 수많은 파문을 생각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파문을 가진다. 깊고 얕게, 넓고 좁게, 길고 짧게. 그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몸짓이다. 죽은 것들에게선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를 향한 가슴 두근거림, 내일의 희망, 먼 곳을 향한 동경은 다 동일한 종류이다. 파문의 속성은 둥글고 따뜻하고 온화하다. 날카롭거나 차갑고 거친 것들은 파문이 아니다. 호수 위로 돌을 던지면 물수제비가 생긴다. 바다제비처럼 날렵하게 수면을 차며 날아가는 둥근 파장은 물의 생각이다. 지문은 손가락의 파문이다. 나선형의 미세한 결은 나스카문양처럼 소용돌이를 가진다. 외부를 지향할 땐 타자에 대한 사랑이 되고 내부를 향할 땐 엄정한 자기성찰이 된다. 안과 밖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궁극의 선(善)이다. 나이테는 나무의 파문이다. 해마다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시간의 연대기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실은 파문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애잔해하는 마음엔 고요한 물결이 인다. 시공을 넘어 무시로 상대에게 가닿는다. 때론 닿지 못하고 안타깝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파문은 수묵화의 먹처럼 발묵한다. 움직임이 있으나 움직임이 없다. 정중동이다. 소리가 있다면 플롯이고 색깔을 입힌다면 노랑, 향기를 품는다면 재스민이다. 파문이 수직을 취할 때 떨림이 되고 수평을 취할 때 스며듦이 된다. 파문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는 마중물이다. 서로를 향한 진정이 없다면 관계는 의미를 잃는다. 새가 가지를 떠날 때,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 때, 구름이 산허리를 지날 때 두 개의 사물 사이엔 가만한 그리움이 생성된다. 나이가 쉰을 넘어가면서 파문이 없어졌다. 새로운 성취를 위한 간절함도, 생에 대한 희열도, 미지에 대한 설렘도 없다. 느낌이 사라지다보니 삶이 건조해졌다.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고 생각은 화강암처럼 굳어져버렸다. '누가 수천,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거야' 생떽쥐뻬리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사이다. 어떤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꽃과 꽃이 사는 별에 대해 파문을 가진다. 어머니는 해마다 집 앞 폐가에 채소를 가꾼다. 여든을 넘어선 나이에 괜한 수고라며 자식들이 말려도 막무가내이다. 계절마다 손수 가꾼 수확물을 봉지봉지 아들 딸네에게 싸준다. 당신의 사랑에는 우직한 무늬가 있다. 어느새 사월이다.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저 초록의 진동이 시나브로 번져 만화방창이 되고 어느새 신록도 우거지리라.
김 영 식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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