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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와 문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3월 29일(목)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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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 같지 않은 봄이 마침내 왔다. 앞을 다투어 봄꽃들이 연이어 피고 있다. 활짝 핀 봄꽃들은 경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올 것이다. 봄꽃들과 함께 월정교가 곧 완공되어 완공식을 갖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문천(蚊川)을 가로지르는 월정교의 모습은 신라 문화의 찬란한 문화위용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복원된 월정교는 분명 경주의 랜드마크가 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경주에는 시각적인 볼거리와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런 점은 오직 경주만이 지닌 강점이다. 유적과 유물에 관한 이야기는 경주를 찾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상상력과 흥미를 불러올 것이다. 삼기팔괴 중 하나인 문천도사처럼 문천을 거슬러 오르는 이야기들이 있다. 월정교와 그 밑을 흐르는 문천에 담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경덕왕 19년(760년)에 문천에 월정과 춘양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문천 위에는 그 이전에도 다리가 놓여 있었다. 원효가 건너게 된 문천교이다. 과부가 된 요석공주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원효는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건너다 일부러 물에 빠졌다. 이를 본 관리가 원효를 요석궁으로 데려가 옷을 벗어 말리게 하였다. 이로 인해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이때 생긴 아이가 바로 설총이다. 월정교 조금 아래 쪽에 김유신 장군의 집인 재매정택이 있다. 문천 맞은 편에 김유신 장군이 화랑이던 시절, 그의 첫사랑인 천관의 집이 있다. 어린 유신은 첫사랑 천관을 만나기 위해 문천을 수도 없이 건넜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정교가 자리한 문천은 애틋한 사랑의 공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월정교 위쪽으로 가면, 박물관 서쪽 편에 월정교와 같이 지은 춘양교지가 남아 있다. 춘양교는 또 다른 이름으로 효불효교(孝不孝橋), 칠성교(七星橋)로 불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효불효교에 대한 재미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라 때 아들 7형제를 둔 과부가 있었는데 사통하는 남자가 물의 남쪽에 있었으므로 아들들이 잠들기를 엿보아서 가곤 하였다. 그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 다니니 자식된 자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가"하고 드디어 돌다리를 놓으니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겨 행실을 고쳤다. 그 때의 사람들이 그 다리를 효불효교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살아 있는 어머니에게는 효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이기 때문에 효불효교라 불렀다는 것이다. 또 일곱 형제가 합심하여 놓은 다리라는 뜻에서 칠성교(七星橋)라고도 한다. 문천의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망덕사지 인근에 장사 벌지지(長沙 伐知旨)가 있다. 박제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구려에 인질로 가 있던 눌지왕의 동생 보해를 구출해온 충신 박제상은 또 다른 아우 미해를 구출하기 위해 집에도 들리지 않고 왜국으로 떠난다. 뒤늦게 이를 안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따라 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따라가다 지친 부인은 망덕사 남쪽 문천 모래벌에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이런 부인을 친척들이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일으켜 세워 집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더욱 용을 쓰며 길게 드러누워 모래땅을 뻗대며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일 땅의 이름을 벌지지라 했다. 벌지지는 우리말 '벋디디'란 말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복원된 월정교의 모습과 문천의 흐르는 물위에 담긴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별처럼 반짝이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분명 경주에 널려 있는 이야기는 시각적인 볼거리와 더불어 관광 경주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유문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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