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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화를 논하는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8년 03월 08일(목)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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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발 Me-too의 태풍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계를 집어 삼키더니 급기야 정계와 온 나라 민심을 뒤흔들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공작의 냄새가 난다고 미리 예방조치를 하더니, 올 것이 왔다.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안희정의 여비서 성폭행에 이르러 마침내 이 거대한 운동은 이제 작은 클라이막스이자 변곡점을 친 기분이다. 수많은 기인들, 아니 괴물들에 대한 고발들이 그저 냉소 정도의 반응이었다면, 유독 안희정의 미투 고발에 이르러선 왜 밤새도록 더럽고 추한 기분이 따라다니며 그것이 마치 내가 저지른 일 인양 착잡해지는 것일까? 그는 많은 젊은이들과 중도계열 유권자들을 유혹하던 미래세대의 지도자였으며 충남 도정을 두 번이나 안정감 있게 이끌던 유능한 정치 지도자였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런 나락속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했으며 그 이중적 행동의 심리 속엔 도대체 어떤 괴물적 심리 기반이 있는 것일까? 7080이란 용어가 용도 폐기된 60대들의 자기 위안소가 된 지금, 이제 또 하나 용도 폐기될 위기에 처한 것이 있으니 곧 386과 그 이면에 숨은 그릇된 신화들이다. 민주화 투쟁이 절정에 달아오를 시점. 나는 동료 대학생들의 데모 참여를 독려하는 어설픈 격문 하나를 쓴 죄로 입영 당하여 33개월 보름을 알차게 채우고 천리행군 와중에 제대한 바 있다. 안가에 끌려가 고문당하거나 투옥되어 무수한 고초를 당한 사람들에 비해 정말로 가벼운 조치로 끝난 내 경우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면 잠잠하던 피가 끓어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종로와 청와대 부근으로 밀고 올라가고 쏟아지는 최루탄과 정권의 폭력을 피해 무수한 골목으로 도망쳐 내달렸던 그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정의와 민주화라는 신기루에 취해 거리로 뛰쳐나갔던 이십대였다. 이름하여 386. 그러나 오늘 나는 그 386의 찬란한 이름이 역사의 더러운 쥐새끼마냥 한없이 도망가는 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그 순수했던 열정과 새로운 국가를 향한 열망은 청산해야할 또 다른 권력이 되었으며 전 세대의 모든 폐습과 탐욕의 때를 온 몸 가득 묻힌 더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진리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민주화 항쟁의 모든 전리품을 독차지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빨치산적 논리로 무장하여 정계로 진출한 소수의 항쟁 엘리트들은 이제 진리의 신 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이름을 내려야 할 때다. 시대가 주는 암울함 속에서 자행되던 빨치산 적 여성 인권의 유린은 젊은 시절의 치기 정도로 치자. 집행부의 말 하나에 이유도 없이 변절자로 내쳐지던 그 시대의 오만함이 권력을 쥔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니, 종로와 온 거리를 함께 내달리던 이름 없는 우리는 까닭 없이 서글프고 더럽고 착잡한 심정인 거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작은 대의를 무참히 짓밟고도 그것이 당연한 젊음의 권리인양, 시대의 기린아인양 의기양양하던 시절. 그것은 벌써 용도 폐기되어야 했을 어린 시절의 치기라는 얘기다. 병신들아. 그대들이 주창하던 작은 논리 값은 사장된 지 오래다. 그러나 어떤 경우, 어떤 시대에도 지켜야할 진리는 지금도 유효기간이 없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이다. 나는 오늘 마음속에 작은 위폐를 하나 모시고 술 한 잔 부으련다. 故(덧말:고) 386. 잘 가시게! 주> 여기서 인용한 386은, 단지 그 시대를 아우르는 대명사로 인용한 것입니다. 386에 앞선 475세대의 이름은 당연 386과 분리되어야 하나 글의 흐름상 386속에 넣어 정의했음을 알립니다. 전진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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