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체 게바라-배낭 속 69편의 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11월 23일(목) 18:19
|
|
 |  | | | ↑↑ 전인식
시인 | | ⓒ 경북연합일보 | 50년전, 1967년 10월 9일 그는 39살의 나이로 죽었다. 올해가 사망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20세기를 움직인 100인중 하나로 평가했고 최고의 지성인 사르트르가 '우리시대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칭송했던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책과 시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볼리비아 밀림 속에서 낮에 방아쇠를 당기던 손으로 밤엔 책을 읽었다. 동료들이 지쳐 잠든 그 시간에 혹시 책장 넘기는 소리에 잠이라도 설칠까봐 조심스레 시를 읽었을 그와 많은 책을 읽도록 일부러 자는 척 해주는 동료들을 생각해 본다. 현실이 아닌 시로 만날 수 있었던 세상을 꿈꾸며 필사를 하던 상처투성이 손을 생각해 본다. 잠 못 든 밀림속의 달밤의 고요는 얼마나 깊었을까. 그가 남긴 홀쭉한 배낭에는 덧칠을 한 낡은 지도 한 장과 두 권의 비망록 그리고 죽는 날까지 필사를 했던 69편의 시가 담긴 녹색노트가 전부였다. 파블로 네루다를 비롯해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엔, 레온 펠리페 등 시인들의 시속에는 그가 염원했던 세상이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47명의 게릴라 부대로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세상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의대생 시절 친구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구석구석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뗏목을 타지 않았다면, 나환자촌을 찾지 않았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사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며 골프를 치며 안락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과 구조적인 사회 모순을 치유코자 했던 결정적인은 계기는 모터사이클 여행을 통해 마주한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었다. 인구의 2%의 지주가 농지70%를 차지하고 있던 정치, 경제상황과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빈곤의 악순환이 정의에 불타는 그를 투사가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모터가 달린 자전거로 여행을 한 것은 마치 고행 뒤에 깨달음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이를 소재로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해 성공한 쿠바혁명의 단물을 마시지 않고 그는 다시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피델 카스트로와 더불어 권력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장관직을 수행하며 혁명이후에 찾아오는 권력의 단맛에 취했더라면 우리들은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신념대로 양심을 실천하며 살아온 그가 볼리비아 특수부대원의 총에 맞지 않고 여태 살아 있었다면 의사로 되돌아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시인이 되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혁명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권력의 자리에는 결코 앉지 않았을 것이다. 좌파나 우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세상의 모든 기존체제나 권위에 저항하며 불평등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새로움을 추구하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가슴 뜨거운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베레모에 카키색 군복, 텁수룩한 수염, 깊은 눈동자,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듯한 외모를 지닌 그의 모습이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어보지 못하고 청춘시절은 지나갔지만 한번쯤은 입어보고 싶다. 총을 든 혁명가, 책을 사랑한 독서광, 시를 읽으며 여인을 그리워한 로맨티스트, 민중을 사랑한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 그리고 진정한 리얼리스트인 그의 삶을 되새겨보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읽었을 시 한편을 홀쭉한 그의 배낭속에서 꺼내 읽고 싶다. 노란 은행잎 바람에 날리는 만추의 계절이 다 가기전에.
*홀쭉한 배낭:구광렬 교수의 저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 빌려옴.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