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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기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9월 26일(화)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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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준한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1주일 후면 추석 한가위다. 추석의 기원은 신라 3대왕인 유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사기_신라본기 유리이사금조'에는 추석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왕이 이미 6부를 정한 다음에 가운데를 둘로 나누고서 왕녀 두 사람으로 해금 각기 부 내의 여자를 거느리고 편을 지어 가을 7월 기망(旣望; 16일)부터 매일 일찍 대부의 뜰에 모여 길쌈(베짜기)을 하고 한밤중에 파하되,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조사해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하니 이에 노래와 춤 온갖 놀이가 벌어졌는데 이것을 가배라 했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고 읊조려 "회소會蘇 회소"라 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도 우아했다. 후세 사람들이 그 소리로 노래를 만들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했다" 여기서 나오는 '가배嘉俳'는 '가우嘉優'라고도 불렸는데, 이 날이 설과 함께 오늘날 우리민족의 2대 명절인 추석 한가위인 것이다. 이 기록에 대해 모 지방거점국립대학 사학과에서 수십 년간 후학을 양성했던 어느 역사학자는 '가배'가 유리왕 대에 있었다는 이 기사는 신빙성이 없으며,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시대에 이루어진 명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돌산 고허촌장의 이름인 '소벌도리蘇伐都利'에서 '소벌'은 경주, 즉 신라를 지칭하는 말이며, 소벌공은 신라의 지배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필자는 이미 지난 칼럼에서 월지족인 서역 쿠차왕의 성이 '소벌'씨라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이 역사학자는 혁거세 왕이 초대왕이 아니라, 남해왕이 초대왕이었는데 후대에 가장 늦게 나타난 혁거세 왕을 역사를 유구하게 만들기 위해 시조 남해왕 앞에 포개 올리는 가상加上 작업을 했다는 참으로 특이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삼국유사'에서는 혁거세왕에 대해서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광명으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불구내'라는 한자 다음에 '광명'이라는 단어가 설명으로 뒤따르는 것으로써 우리는 '불구내'라는 단어가 '붉은해(혹은 밝은해)'라는 순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한자를 빌려온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즉, 혁거세를 '태양(신)'으로 간주한 것인데, 이것은 고구려 시조 주몽을 '동명東明'이라고 해 동쪽에 떠오르는 태양(신)으로 표현한 것과 동일하다. 가야 시조 수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연호탁 교수는 '수로'가 태양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urya'의 음차音借로 파악하고 있어서, 한국 고대사 난생신화의 세 주인공 이름의 의미는 모두 태양(신)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한가위의 어원이라고 밝힌 '가우'와 '가배'는 둘 다 아베스타어 'gau'와 그 파생어 'gave'에 해당하는 단어로서 '정착settlement'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결국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나라를 세운 뒤에 약 90년이 지난 유리왕 9년(기원후 32년)때에 와서야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예를 통해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역사 기록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강단講壇사학자임을 알 수 있으며, 더 무서운 사실은 그러한 학설이 그 교육을 받은 후학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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