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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상처투성이 숲이 화려한 외출 나서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9월 21일(목)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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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 | ⓒ 경북연합일보 | 현관문을 열고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바람이 속삭인다. "이제 내가 왔어요"라며 볼살과 귓불 사이로 스르륵 한 번 스친다. 그리고 다시 휘몰아치더니 돌아오는 바람엔 날개 달린 열매가 "이제 가을이야"하고 신고식을 마치며 간지럼을 태운다. 그저 높고 넓은 하늘의 바다엔 덩어리 진 거품 같은 구름이 아주 큰 파도가 일듯이 쏴아르 빠른 흐름을 타고 곧장 사라진다. 이리도 빨리 흘렀을까. 어디를 가도 어떤 나무라도 어떤 숲의 나무라도 상처가 없는 나무가 없다. 아래 웅장한 작은 숲의 나무들은 가시광선의 청색계·적색계 흡수로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출렁거리며 바람을 연주하고 있다. 바람소리 음표가 오늘도 숲으로 가라 알린다. 아니, 내 귀에 들리게 한다. 숲길은 꽤 시간이 지남에 있어 누군가 찾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오솔길조차 황금빛을 차지하기 위한 작은 나무들의 몸서리치는 듯한 경쟁으로 인해 길 중앙은 엎치락뒤치락 엉겨 붙기 직전이다. 잔바람과 작은 벌레들의 뛰어오름으로 인해 가지와 잎들이 휘청이고 곧장 멈춰야만 하는 미묘한 움직임에 주변을 두리번 거려본다. 놓칠 수 없는 경계의 색으로 마주친 이 녀석 배얼룩재주나방의 종령유충(애벌레)이다. 숲을 오랫동안 줄기차게 다니다보면 나 또한 이들의 천적으로의 역할에 몰입하는 것이 아닌지, 마치 먹이는 찾는 행위를 하듯, 행위로서의 몰입이다. 거의 보호색으로 위장한 녀석도 자주 발견하기 때문에 스스로 놀랍기 그지없다. 지금 내 앞의 애벌레는 아주 선명한 무늬와 색으로 뛰어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날 잡아 먹어봐야 별로 맛도 없고 오히려 독하고 너한텐 해로울 거야"라고 무언의 색과 무늬로서의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나의 발걸음으로 인한 진동과 길 가장자리 빛을 차지 하기 위해 서로 먼저 뻗어있는 가지와 어린잎들이 찢어질 정도의 몸부림으로 헤쳐 나왔지만 배얼룩재주나방의 애벌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저 몸속 가득 영양을 품어 마지막 번데기가 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념으로 '쓰으슥 쓰으슥' 미동도 없이 갉아먹기 바쁘다. 아까시나무(옛 이름 아카시아나무)의 잎자루도 남겨두지 않는 깔끔한 식성이다. 더 늦다가는 번식에 임할 수 없으니 바로 옆 최상의 먹이피라미드의 꼭대기층과 사이사이 통틀어 통제 불가의 인간이라는 존재가 버티고 서있는데도 기척도 없다. 오로지 홀로 선다. 자기의 먹이(먹이식물)를 정하고 천적을 따돌릴 칼라풀한 전투복을 입고 태세를 갖춘다.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세월의 진화이다. 아직 은빛 황금색이 울창한 숲의 틈새를 뚫고 쏟아진다. 나뭇잎 사이로 가느다랗게 내리지만 곧장 성층권 대기를 통과해 마하의 속도로 나를 감싸버렸다. 또한 빛마저도 흐트린 바람은 잠잠하다. 이미 숨을 헐떡거리며 가지와 잎새가 얼 키고 설 켜 몇 층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숲 공간에 떡하니 버텨본다. 주변의 이파리는 병들고 먹히고 짓기고 온몸이 벌써 부서져 내리기 직전이다. 그럼에도 버티며 달려있는 나뭇잎들은 곧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마지막 숲속의 향연을 펼칠 것이고 갖추갖추 다양한 색으로 익어가는 열매들 또한 온갖 곤충과 동물들을 먹여 살릴 것이다. 숲에선 가을꽃들이 늦도록 필 것이다. 온전히 남은 나뭇잎들과 함께 온몸 낱낱이 구멍나고 상처난 잎들도 원색으로 갈아입고 가을꽃들이 피어 만발한 가운데 화려한 외출에 나설 것이다. 여린 봄날을 만나기 위한 화려한 외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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