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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신라 왕경이 된 이유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22일(화)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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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준한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한반도에 건너와 각지에다 나라를 세우면서 이동한 월지족들은 한반도의 수많은 지역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경주를 신라의 왕경(王京)으로 정했을까? 어떤 한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특정 지역이 그 나라의 수도로 결정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내외 학자들은 신라를 수립한 선조들이 경주를 왕경으로 삼은 거시적인 이유보다는 왕경의 발달과정 속에서 시행된 도시계획의 복원과 같은 미시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쏟아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이유는 남산의 옥이었다. 연호탁 교수는 '월지(月支)'라는 단어의 의미를 '옥'과 연관을 시키는데, 비록 그러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월지족이 옥을 선호한다는 것은 각종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경주 남산에서 옥이 난다는 것이 그들이 경주를 도읍지로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처음에 필자의 머리에 떠오른 경주가 신라의 왕경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월지족들이 좋아하는 광물인 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그 후 연구에 몰두하던 어느 겨울철 새벽녘, 당시 충효동에 위치했던 필자의 집에서 서천 고수부지 방향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장군교 밑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반월성 옆을 흐르는 남천과 서천교와 장군교 밑을 흐르는 서천, 그리고 보문호에서 내려오는 북천이 구 시가지, 즉 옛날의 신라 왕경을 휘감아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지형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으로부터의 방어에 아주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지족의 뿌리인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대제가 바빌로니아 성을 침공했다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바빌로니아 성이 강물로 감싸인 곳, 즉 천연 해자(垓字)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월지족들은 인공 해자 혹은 강물과 같은 천연적인 해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반월성 안에도 인공 해자의 흔적이 발굴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는 소위 선사시대의 유적지 안팎으로 해자 또는 환호(環濠)의 흔적들이 발굴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은 큐우슈우 지역과 야요이 문화 지역, 중국에서는 서안 반파촌 문화와 앙소 문화, 그리고 흥륭와 문화가 발견된 요령성 일대에서 환호가 발견된 바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스톤헨지를 둘러싸고 있는 환호와 켈트인의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환호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 모든 곳들은 필자가 이미 책에서 월지족들의 이동 흔적이라고 주장했던 곳들이다. 그리고 최근 전국 선사유적지 답사여행을 통해서 마침내 경주가 신라의 왕경이 된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월지족들이 경주를 포함해 물이 굽어 도는 곳에 터전을 잡았던 이유는 현대와 같이 광산을 채굴할 기술과 장비가 없었던 그들이 산 속에 묻혀 있던 광물들이 빗물 등을 타고 흘러 내려와 물이 굽어 돌아서 유속이 느려지는 곳에서 퇴적된 것을 채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홍국 교수가 반월성 옆과 금곡산이 있는 안강읍에서 사금을 채취한 것이 필자의 이론을 증명해주며, 가야·백제·고구려의 왕경 선정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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