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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간의 답사여행을 마치고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01일(화)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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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이준한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지난 7월 20일부터 31일까지 12일간 전국 선사시대 유적 답사를 다녀왔다. 지난 주 칼럼에서 이 여행의 목적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번 답사여행의 주목적지를 소위 구석기 시대 유적지로 잡은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국 고대사에 대해 지난 책에서 주장했던 내용 중 확실하게 틀린 것 한 가지를 추가 연구를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즉, 지난 번 책에서 필자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돌을 도구로 만드는 방법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지만, 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는 서로 다른 시기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같은 시기의 사람들이 문화 수준과 신분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재질의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선사시대에 대한 시대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었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 중 그 후 잘못을 깨달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구분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의 근거는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소위 전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유물이라는 주먹도끼가 월지족이 거주했던 남부시베리아 파지리크 인근의 예니세이 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으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라는 이름이 붙게 된 프랑스 아슐 지방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도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는 자료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전 세계 고인돌의 분포지가 바로 월지족의 이동 경로를 나타나는 표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슐 지방에서 멀지 않는 곳에 고인돌들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 주먹도끼를 만든 주체가 월지족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답사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월지족들이 물이 굽어 도는 지형에 거주지를 선택한 이유를 파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필자가 고대사 연구를 수행하면서 사용하는 세 가지 기법 중 하나인 '패턴을 이용한 분석'과 결합해 새로운 증거자료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즉, 필자는 답사 마지막 날 폭우 속을 뚫고 대전 용호동에 위치한 유적지에 갔다가 인터넷을 이용해 그 지역의 지도를 확인했었다. 그런데 용호동 지역의 맞은편에 있는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노산리의 지형이 정확하게 물이 굽어 도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바로 이 지역에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있는지를 검색한 결과 예상대로 이곳에서 주먹도끼와 함께 구석기 시대 유물 천 여점을 발견했다는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전 둔산선사유적지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같이 나오고, 양구 펀치볼 지역에서는 한술 더 떠 깊고 깊은 산중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까지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그 이유는 그들이 진짜 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월지족들이 한반도로 건너온 후에 그들의 원래 목적인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깊은 산중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철이나 금과 같이 그들에게 필수적인 광물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철기 시대이기는 하지만 당시에 철기는 주로 무기류에 사용됐을 것이며, 일반인들은 돌로 된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구한 광물들로 청동기·철기를 제작했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구석기부터 철기까지의 유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결국 전체 흐름을 알아야 맥락이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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