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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석 장인, 예술로 빚어낸 신라 천년 역사
26세, 국립경주박물관서 본 신라토기와의 '운명적 만남'
10년간 전국 방방곡곡 다니며 경주서 최적의 흙 찾아내
장경호·고배·각배·신구형·차형·기마인물토기 등 재현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7월 27일(목)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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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경주민속공예촌 장인을 찾아서…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그것을 찾아내고 미래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을 때 그 찬란함과 가치는 되살아 난다. 경주민속공예촌은 1986년 신라시대의 공예기술을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해 토함산 기슭에 조성한 마을이다. 우리 민족의 얼과 멋과 솜씨가 깃든 전통민예품을 재현하고 민속공예를 계승·발전하기 위해 흩어져 있던 경주 지역 장인들을 한곳에 모은 촌락 형태의 민속품협업단지이다. 옛 모습을 지닌 전통 골기와집과 초가로 이뤄져 있어 관광객들이 꼭 찾는 곳이다. 전통가구와 토우를 비롯해 신라금관, 불상, 칠보 등의 금속공예품, 청자, 백자, 토기 등 도자기공예품 및 목가구, 목불상 등 목공예품과 죽세공예품, 보석공예품 등을 옛날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재래식 생산과정과 장인들의 솜씨를 관광객이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으며 생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현대식 종합전시장도 있다.
▲토기 재현을 넘어 보급에 힘쓰다 신라토기 제작 명장 제9호 배용석 장인은 경주민속공예촌 내의 도자기 공방 보산토기를 운영하면서 신라토기 재현에 혼신을 쏟고 있다. 배 장인의 집안은 경주 건천면 송선리에서 대대로 옹기를 구웠다. 안동사범학교를 나와 교사가 되겠다던 꿈을 가진 열일곱 청년은 평생을 흙을 만지고 불을 다루며 가업을 잇고 있다. 2대째 옹기 가업을 잇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집안의 맏이였던 그는 가업을 물려받았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옹기가마의 주인으로 일꾼을 다스렸다. 처음엔 속도 상하고 절망도 했지만 옹기 만드는 일이 제법 익숙해지자 흥미가 생겼다. 그는 "남들은 5년 넘게 걸려 익히는 옹기 만드는 법을 그는 3년만에 터득했다.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다고 했지만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옹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여건 때문이었다"고 말하는데 타고난 토기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옹기가 그릇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었으니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던 그에게 토기와의 운명을 정해준 것은 스물여섯 살 때 앓았던 장티푸스였다. 병으로 일을 하지 못했던 그는 일요일마다 현 경주문화원 자리에 있었던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고 그때 본 신라토기에 반했다. 뚫어지라 신라토기를 보다 도둑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쇠같이 생긴 것이 흙으로 빚은 토기라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직접 토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박물관에서 본 대로 여러 번의 실험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도자기야 여러 가지 자료가 나와 있지만 신라토기는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상태였다. 혼자 독학을 통해 그가 찾아낸 실패 원인은 흙과 불이 옹기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전국을 다니며 흙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으로 무등산으로 창원, 김해, 김제 전국의 방방곡곡 흙이 좋다는 곳은 다 다녔지만 10년만에 그가 찾은 흙은 영천과 안강, 내남 등 경주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신라토기 재현에 심혈을 기울여 1982년 경북공예품 경진대회, 전국관광민예품 경진대회 등에서 입상했다. 1991년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에 선정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의 신라토기 사랑은 각별하다. 단순히 토기의 재현을 넘어 보산토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신라토기의 제작 체험을 가르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보급 확산하는 데 힘쓰고 있다. 배 명장은 "요새 나쁜 게 정말 많아. 플라스틱보다는 흙과 나무로 만든 숨 쉬는 그릇이 몸에 좋아. 웰빙하는데 신라토기가 바로 웰빙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흙으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은 다양하며, 내가 원하는 모양은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어 무한한 독창성과 집중력, 관찰력을 높이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되는 기회가 바로 토기 제작 체험이다"고 자부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배우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기술 정도로만 배우고는 도자기 쪽으로 전환한다. 이러다 맥이 끊길까 걱정이 된 그는 몇 해 전부터 며느리에게 만드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 ▲신라토기, 단조로운 듯 정교한 멋 신라토기는 경주지방을 중심으로 기원전 1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무려 천년 동안이나 사용돼 왔다. 진회색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빛깔들이지만 간혹 유약을 바른 것처럼 반들거리며 윤이 나는 것도 있다. 가마 속에서 구워 낼 때의 솔잎재로 인해 생긴 자연유가 덮였기 때문이다. 나무로 굽고, 나무로 구운 토기에는 산소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살짝 두드려보면 맑은 쇳소리가 난다. 고아한 듯 투박하고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정교한 멋을 담고 여기에 흙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바로 천년의 역사와 신비를 간직한 신라의 토기다. 배 장인은 즉석에서 물레를 돌려 토기를 빚었다. 쓱쓱 선을 긋고 조물조물 흙을 만지자 사람형태의 토우가 만들어졌다. 얼굴에 눈을 쿡 찔러 넣자 금방 웃음을 가득 머금은 신라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기다란 뱀과 거문고, 개, 거북이가 토기에 척척 들어붙는다. 눈앞에서 바로 장경호 한 점이 만들어졌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찍부터 신라인의 뛰어난 지혜와 토기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 올리려고 했던 장인 정신이 손끝에서 오롯이 되살아났다. 신라토기는 용도에 따라 일상 생활용품인 장경호, 고배, 각배, 영배 등이 있고 동물, 배, 수레, 등잔모양의 특수한 목적의 이형 토기와 죽은 자를 위한 골호도 있다. 가야토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토우장식토기와 상형토기가 신라토기에도 많으나 목항아리나 굽다리접시의 뚜껑에 동물이나 인물을 조그맣게 만들어 붙이는 것이 신라토기만의 특징이다. 신구형토기, 차형토기, 기마인물토기 등은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등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명품들로, 신라인의 독창적인 제작기술은 물론, 신라인의 삶과 얼이 그대로 담긴 명기들이다. 신라토기는 수도승의 고행의 시간과 같다. 배 장인은 전동 물레가 아닌 전통 방식 그대로 발로 힘들게 물레를 돌려 토기를 빚는다. 토기를 그늘에 말리기를 30여일 그렇게 빚은 토기를 또 가마에 앉힌다. 가마는 4박 5일간 쉬지 않고 불을 때야 한다. 토기의 완성은 불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종류의 도자기는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로 만든 동일한 양식의 그릇이더라도 번조(그릇에 불을 익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마 안의 불의 세기에 따라 색상이 달라진다. 가마 구멍으로 불을 보며 온도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에 불을 지핀 5일 내내 도공은 사뭇 긴장 속에서 보낸다. 불을 다 땐 5일째, 가마의 모든 구멍을 꽉 막은 뒤 또 다시 닷새를 기다린다. 그 5일의 시간 동안 깊은 침묵 속에서 토기는 가마 속의 재와 연기를 온몸으로 흠뻑 빨아들인다. 이후 가마의 재를 끄집어 낸 뒤 다시 구멍을 막고 가마가 온전히 식기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또 열흘이다. 가마에 불을 붙인 지 20일, 고된 땀과 오랜 기다림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후에야 비로소 신라토기는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 최병구 기자cbg@kbyn.co.kr 글 : 김희동 기자khd@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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