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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와 방관의 극치, 경주의 교육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7월 26일(수)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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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전진은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 시내 K여중의 영어 수업은 부교재도 보충교재도 없다. 오로지 3년을 내리 교과서만 배우다 나온다. P양은 항상 전교 10등에서 15등 안에 드는 K여중의 우수학생이다. 시험 때마다 한달전부터 교과서를 달달 외고 학원에서 마련해주는 예상문제를 죄다 풀고 들어가니 시험점수가 90점 이상인 건 당연. 성적에 만족한 P양은 당연히 지역 명문 K여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첫 전국 모의고사에서 P양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왜? 그녀가 K여중에서 배운 삼년 치 수업내용을 A4 용지로 타이핑하면 40페이지 내외(이 컬럼이 대략 A4 한 장 분량). 거기서 중 1과 중2 첫 학기의 쉬운 지문들을 빼고 나면 그녀가 배운 실제 내용은 A4 스무장도 안된다. 진학 전 평균 1000쪽 내외의 독해량을 가지고 진학하는 수도권 학생들에 비하면 이건 아예 삼년을 논 것이나 마찬가지다. P양의 힘든 고교시절이 시작되었다. 지역 명문으로 자처하는 K여고 1학년 영어 수업. 대여섯 줄의 독해 지문 두어 개가 전부다. 또 다른 지역 명문 K고의 영어 수업도 다르지 않다. 한 시간 기준 독해 지문 두어 개와 사담과 잡설. 이러니 한 학기 내내 수업해도 진도는 겨우 책 반 권. 사담과 잡설도 미래를 향한 멘토링이나 눈떠주기가 아니라, 순전히 사담 그 자체뿐이다. 기가 찬 노릇이다. 지역의 최우수 학생들을 깡그리 쓸어가고도 수업방식은 시대를 역행한다. 미리 예습 분량을 주고 실제 수업에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하루 지문 열 개인들 못하겠는가?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교사의 나태함이 학생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공부 싹을 잘라내고 있다. 영어 에세이나 회화는 아예 손도 안대고 있다. 그런 것은 죄다 알아서 해야 한단다. 뭘 어떻게? 저녁 배식 후 경주의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에 들어간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예외 없이 전교생이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한다. 개인 사정이 있어도 전체 자습 분위기를 해치기에 일체 조기 귀가를 허용하지 않는다. 일사분란하다. 밖에서 보면 불이 환하게 켜진 학교는 마치 주경야독에 빠진 선비들의 천국처럼 보인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기왕이면 이름도 바꾸고 싶다. 야간 자율 학습이 아니라, 야간 강제 타율 학습으로. 왜 안 되겠는가? 어떤 학생이 있다. 부모의 선택으로 지역명문에 입학을 했으나 1학기 첫 시험을 치르곤 기가 꺽여 버렸다. 달리 배우고 싶어도 열시까지는 나갈 수가 없다. 토요일엔 의무적으로 5시까지 또 강제 자습. 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또 강제 자습이다. 모르는 게 있어도 물어볼 교사가 없다. 그런 제도조차 없다. 층마다 교사 한명이 전체를 감독할 뿐 강제학습으로 밀어붙이는 학교에는 자신을 보완해줄 선배도 과목 교사도 시스템도 없다. 아이는 그 시간 혼자 무지와 방황의 바다 속을 떠돈다. 어쩌겠는가? 속수무책으로 지쳐가며 아이는 자신을 잃어간다. 속이지 말고 속지말자. 이것이 바로 대다수 학생들의 현주소다. 출신고 학생 몇이 명문대에 갔다고 자랑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등생은 누가 가르쳐도 우등생이 된다. 그대들의 자랑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밑바닥을 보는 것이어야 한다. 삼년을 학교의 울타리에 갇혀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라. 기초부터 세워주고, 차근차근 일으켜주고, 미래를 위한 설계도를 그려주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한다. 수도권에서는 한 학생을 두고 일학년 때부터 교사들이 분석하고 계획을 짜고 스토리를 만들어 준다. "우리가 저 정도의 학생들을 받았다면 최소 서울대 50명은 보낸다" 어느 수도권 교장 선생님의 탄식을 그저 흘려듣지 말자. 교육은 이제 교사들의 전쟁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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