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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의 순간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7월 25일(화)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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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이준한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 지난 주 목요일부터 저술 작업을 위한 자료 수집차 소위 구석기 시대 유적지라고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전국 답사여행을 하는 중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하여 관련 자료를 충분히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현장 답사여행을 강행한 것은 지난 책에서도 밝혔듯이 현장에 가면 인터넷이나 책에 있는 자료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찍은 사진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낀 것도 또 한 가지 이유였다. 첫날 단양을 들러 수양개 유적지와 금굴 유적지를 들렀는데,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에 그려진 한반도 구석기 유적지 분포도를 보고서는 월지족의 표지 유물 중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는 검은 간토기의 분포도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소위 구석기 시대 유적지라는 것이 한반도 내 철기의 전파 경로와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의 철기 전파 경로는 평양에서 서울 인근 지역을 거쳐 충청도와 경상도를 거치는 육로와 서해와 남해 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해로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 경로가 낙동강 하류에서 합류한다고 한다. 그리고 철원에서 인제를 거쳐 강릉으로 연결되는 검은 간토기의 출토 지역 역시 구석기 시대 유적지의 분포와 일치했다. 또한 단양 금굴은 도담 삼봉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되는 전형적인 지형인 동그란 원형을 남한강이 그리면서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금굴 유적지'를 목적지로 네비게이션을 이용해서 도착한 곳에는 표지판을 찾아볼 수 없었고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겨우 찾아낸 동굴 입구에만 표지판이 붙어 있었는데, 다른 지역의 구석기 유적지들도 표지판을 찾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둘째 날 간 곳은 소위 전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연천 전곡리였다. 이곳에서는 전곡선사박물관을 들른 뒤에 주먹도끼가 발견된 한탄강변에 내려가 강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이곳 역시 단양 금굴과 마찬가지로 한탄강이 동그랗게 맴돌아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전곡리에서 발견된 전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유물이라는 주먹도끼는 월지족이 거주했던 파지리크 인근의 예니세이 강에서도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월지족이 흉노를 피해 이동하던 도중 들렀던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인근에서도 발견된 바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셋째 날에는 구석기부터 삼국시대의 유물까지 한꺼번에 발견된 양구 펀치볼 지역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동하는 내내 월지족들은 왜 이렇게 물이 돌아 흐르는 곳에 거주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신라 왕경 경주 지역도 남천, 서천, 그리고 북천이 둘러싸고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한 지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처럼 깊은 산골까지 적의 침입이 잦지는 않았을테니 맹수의 침입을 막기 쉬운 지형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당시 금이나 철을 구하기 위해서는 굴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려우니 강변에서 금이나 철을 채취해야만 했겠구나는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광물 채취를 위해서 물이 굽어 돌아서 광물들이 퇴적되는 곳에 터를 잡은 것이었다.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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