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경북연합일보 | | 항간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신라의 왕도 경주에는 신라를 건국한 박씨 주요 집성촌이 없다. 인구가 가장 많은 밀양 박씨는 주요 집성촌이 예산, 청주, 진도, 남원, 청도, 밀양, 의령이며, 두 번째로 많은 반남 박씨는 나주, 영암, 완주, 논산, 포천, 은율, 산청, 영주, 안동, 그리고 금산이며, 세 번째인 함양 박씨는 진도, 영암, 김제, 고창, 진천, 칠곡, 의성, 네 번째인 순천 박씨는 보성, 정읍, 청주, 군위, 고령, 성주, 합천, 남양주, 평택, 그리고 인제가 주요 집성촌이며, 다섯 번째인 무안 박씨의 경우는 무안, 진도, 해남, 논산, 그리고 영덕이 주요 집성촌이다. 이처럼 인구 순으로 박씨 주요 다섯 본관의 집성촌이 경주에는 없고, 오히려 전남 지역(진도, 나주 반남, 영암, 보성, 무안, 해남)에 집중되어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참으로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보다 더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처럼 얼핏 보기에 기이한 현상 뒤에는 전라도 지역에서 유독 일본 야요이 시대의 특징을 가진 분묘나 유물이 많이 발견되어서 일본 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 주장의 빌미를 제공하곤 했던 역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눈을 조금 크게 떠서 이들 박씨 집성촌이 몰려있는 전남지역 주변을 둘러보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보인다. 첫 번째 단서는 이들 박씨 집성촌 인근에 2000년 12월에 강화도, 고창지역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고인돌 유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단서는 반남 박씨의 본관이 있는 나주시 반남면 주변으로 형성된 영산강 유역 대형 옹관(독널) 유적지인데, 처음 대형 독널이 조사된 나주를 비롯하여 영광, 함평, 무안, 영암, 광주, 해남 등 전라남도 서부와 서남부 전역에서 영산강 유역을 따라 많은 수의 대형 독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대형 독널이 발견된 지역은 앞에서 소개했던 박씨들의 전남 지역 주요 집성촌과 거의 일치한다. 세 번째 단서는 나주와 반남을 거쳐 영암 일대에 즐비하게 늘려 있는 대형 고분군들인데, 어떤 이는 이 고분군들을 보고는 마치 경주에 온 듯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대형 고분군은 나주 반남면에만 40기, 영암에는 40곳에 150기가 존재하는데, 영암 내동리 1호분은 길이 56m, 높이 5-8m로 연인원 5천명 이상이 동원되어 만들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백제의 무령왕릉보다 두 배나 크다고 한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신라를 세운 박씨는 월지족이며, 이들은 장례법으로 조장을 이용했는데 고인돌과 옹관은 이러한 조장에 사용되었던 흔적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그리고 신라 김씨는 그 근원이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흉노족이 아니라, 월지족과 같은 아리안 계통인 사카족이라고도 밝혔었다. 그런데 박씨에서 석씨로 왕권이 넘어간 것은 같은 난생 신화를 가진 월지족 내 역성혁명에 의한 것이었지만, 석씨에서 경주 김씨로 왕권이 넘어간 것은 사카족의 역성혁명에 의해서 월지족이 쫓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은 신라 내물왕(재위 : 356-402) 때였는데, 이때는 영산강 유역의 대형 옹관 문화가 시작되었던 4세기 무렵과 일치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3세기 중엽에 영산강 유역 대형 옹관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이 옳을 경우에는 석씨에 의한 역성혁명이 일어난 직후에 바로 박씨들의 전라도 이주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박씨들이 전라도 지역으로 이주한 이유는 백제 역시 월지족인 주몽의 후예에 의해서 세워진 같은 뿌리의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이준한 칼럼니스트
|  | | | ↑↑ <그림> 전라도 지역 박씨 집성촌 . | | ⓒ 경북연합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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