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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박스가 아니라 내용물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7년 03월 05일(일)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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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생명존중’. 예전에는 ‘자살예방’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생명존중’으로 명칭을 바꿔 불러지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인문과 생명존중강의를 진행하다보니 ‘자살’의 문제는 결국 ‘나다움’과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함에서 발생한다. ‘나다움’은 어느 것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은 내면보다는 외모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외모 가꾸기에 열심을 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소중한 분에게 ‘귀중한 물건’을 선물로 보내려고, 고급스러운 값비싼 박스를 구해서 아주 정성스럽게 박스를 포장한 다음에, ‘이 상자는 소중하니 아주 조심해서 취급해주세요’라고 쓰고는 정작 박스 안에 들어갈 선물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다루고 집어 던진다면 그는 ‘선물’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박스’를 선물하는 것이다. 나다움은 ‘박스’가 아니라 ‘선물’에 있듯이, 나다움은 외적 자아만을 가꾸는 데 있지 않고 내적 자아를 소중하게 보는 태도이다. 융팡의 저서 《장자의 내려놓음》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어느 성의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다. 특히 공주의 머리카락은 너무나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주는 어려서부터 성 안의 높은 탑의 갇혀서 지냈다. 공주를 가둔 마귀할멈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주가 미워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생긴 젊은 왕자가 탑?아래를 지나다가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이때부터 왕자는 날마다 공주가 갇힌 탑 아래에서 공주를 바라보며 황홀해 했다. 왕자의 눈을 통해 공주는 비로소 자신이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주는 탑 아래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왕자가 탑 꼭대기로 올라와 자신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공주를 탑에 가둔 것은 다름 아닌 공주 자신이었다. 탑에서 함께 살던 마귀할멈 역시 공주의 자아로, 자아 속 마귀의 말을 듣고는 자신을 못 생겼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탑에 가둬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 삶을 가둔 이는 비단 공부만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외적자아를 중요시하다 보니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비교 당하면서 열등감으로 자신을 속박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인생에는 수많은 변수가 찾아온다. 마치 비포장도로와 같다. 때로는 힘든 일을 만나고 사람과의 갈등도 겪기도 한다. 이럴 때 내면의 자아는 쉽게 무력증에 빠지며, 삶의 방향을 잃어 인생의 미아가 되기도 하며 충동적인 일까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훌륭함은 상황이 좋을 때만 사유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때 힘이 되는 것은 바로 ‘내적 자아’, 혹은 나다움이 빛을 발할 때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다움을 발견해야 한다. 나다움은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그저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데 있다. 포장지는 걷어 내고 안에 감춰진 나다움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권영민 권영민인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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