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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의 함정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11월 28일(월)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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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 1008명을 대상으로 '직장에서의 폭언 경험'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약 70%정도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직장인들이 직장상사로부터 듣는 가장 불쾌한 언어폭력은 '머리는 장식품으로 가지고 다니냐?', '일을 이따위로 하고 밥이 넘어가냐?'와 같은 것들이다. 이 XX, 저 XX 정도의 폭언은 낮은 수준이었다. 폭언이 직장상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직장 내 폭언이 만만찮음을 의미한다. 막말 이야기가 나오면 정치권도 빠질 수 없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버린다, 대통령을 개구리로 지칭, 대통령이 죽기를 바란다는 명박급사,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아야할 대상이라는 귀태라는 등 현직 대통령에 대한 막말 퍼레이드가 지금까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어느 방송인은 철도를 민영화 한다니까 철도 팔지 말고 대통령 몸이나 팔아라는 막말을 쏟아 낼 정도다. 대통령에게도 이런 막말이 나오는데, 정치권 나아가 사회일반에서 등장하고 있는 막말은 더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막말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도 계속 진행형이다. 그러면 왜 막말을 지속적으로 쏟아 낼까 첫째, 경쟁사회의 단면이다. 막말을 쏟아내면 그것에 반응하는 세력이 있다. 비록 합리적 사고로서는 아니지만 그것에 감정을 쏟아 붇고 열광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이 집중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이 막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말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막말에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안티세력이 등장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막말을 통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인, 연예인 등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막말을 쏟아내는 것이다. 둘째, 자기희열이다. 막말을 쏟아내면 그것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 만족감에 사로잡힌다. 물론 비난세력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막말에 지원세력이 있다는 사실에 자기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제프리 클루거의 '옆집의 나르시시스트'에서 전형적으로 미국 공화당 경선주자 트럼프를 예를 든다. 공개적으로 막말을 일삼으며 상대방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는데 이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한 비정상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반응하는 이들만 보이고 비판적인 이들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상습적으로 막말을 고안해내고 그것을 쏟아내는 이들은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막말을 시작하면 자기 자신에게 빠져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다. 셋째, 불안성의 반증이다. 막말은 합리적이지는 않다. 감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성적 사고로 상대방에게 막말하기는 쉽지 않다. 막말 그 자체가 자극적이고 정상적인 통념을 깨는 것들이다. 막말은 반드시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이다. 심리적 불안이 공격성을 띠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심리가 이런 막말을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막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정신적·심리적 질병이다. 막말이 점차 사회 저변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은 사회적 질병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쯤되면 막말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특정인들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막말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누구 막말을 했다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그것을 스스로가 치유하라고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막말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할 시점이다. 문장순 중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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