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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회고록이 말하려는 것
최재석 연합뉴스 논설위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10월 26일(수) 17:46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광화문 대형서점을 찾아간 날은 재고가 바닥이었고 마침 동네서점에 연락하니 한 권이 있었다.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을 정도로 책 두께가 만만찮다. 얼른 논란이 되는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을 다룬 부분을 펼쳤다. 참고문헌을 포함해 550여 쪽 분량의 전체 책에서 '북한 인권, 흔들린 원칙'(446∼454쪽)이란 소제목으로 된 9쪽에 불과했다.
 이 9쪽 분량이 회고록 전체를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돼 버렸지만 그게 본류는 아니다. 회고록은 초임 외교관 2년 차에 겪은 1976년 '판문점 8·18 도끼 만행'사건부터 2005년 9·19공동성명 등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누빈 한 외교관의 치열한 기록을 담고 있다.
 송민순은 '가까운' 과거의 외교·안보 사안을 다루는 데 대한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책 머리말에서 "'절반의 진실은 완전한 거짓보다 못하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진실의 일부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그런 잘못을 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감돌았다. 그래서 가공되지 않은 기록과 기억을 찾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를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시기'를 둘러싼 논란에 비춰보자. 송민순과 다른 관련자들이 하나의 사실을 각자 다르게 해석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회고록은 서별관 회의(2007년 11월 18일) 시작 상황을 "저녁 늦게 청와대 서별관에 도착하니 다른 네 사람(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백종천 안보실장)이 미리 와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451쪽)고 썼다.
 서별관 회의는 대통령주재 회의(11월 16일) 이후 송민순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A4용지 4장으로 된 '마지막 호소문'을 보낸 후 대통령 지시로 열렸다. 이재정 등 4명은 대통령주재 회의에서 이미 '기권'으로 결정 났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볼 수 있고, 송민순은 서별관 회의가 다시 열린 것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서별관 회의 후 북한 의견을 묻는 행위가 '기권 결정 후 통보'나 '사전 협의'로 각각 해석이 나뉠 수 있다. 물론 어떤 해석이 됐든 당시 유엔 표결 전에 북한과 접촉하는 행위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송민순은 회고록을 둘러싼 정치적 파장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논란이 일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책을 썼는데 정쟁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책 '에필로그'에서 그간 북핵 합의가 이행과정에서 실패한 경험이 주는 교훈을 4가지 꼽았다. 첫째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의 의사결정 과정과 협상 형태는 합리적이지 않다. 셋째 미국과 중국 모두 독자적으로나 합작으로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넷째 북핵 문제는 한반도 문제 해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분단의 극복 과정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통일은 당위가 아니라 힘을 요구한다"면서 통일 문제에 관한 주장도 담았다. 특히 정권을 초월하는 통일정책의 지속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5년 단임의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더라도 3년쯤 지나면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은 설사 그 정책에 동의하더라고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통합 없이는 북한이나 주변국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우리에겐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분단 구조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을 가릴 것 없이 기존 정권의 대북정책을 뒤집기 일쑤였다. 지금 여의도는 어떤가. 상대방의 허물만 들춰내 물어대는 구태(舊態)가 여전하다.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실패에서 미래의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도 안 보인다. 대선과 정쟁만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셈법만이 판치고 있지 않은가.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런 정치 이제 좀 그만하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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